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ΙΧΘΥΣ

#12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12 2007년 7월 25일 2007 년 들어 나는 기도제목이 하나 있었다. 1907 년 평양 대회개운동으로 인한 부흥의 역사가 꼭 100 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2007 년 정초부터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와 선교에 어떤 메시지를 주시기를 원했다. 이 기도제목은 선교지 뿐 아니라 한국교회를 해서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 두 달 기도하다 아마 그것을 좀 잊고 지내고 있었다. 2007 년 7 월, 8 월은 유난히 단기 선교팀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었다. 한 팀이 나가면 바로 다른 팀이, 어떤 그는 세 팀이 같은 기간에 몰려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때는 집사람이 한 팀, 내가 한 팀을 맡고 한 팀은 그 팀들 스스로가 알아서 사역을 했다. 그리고 2007 년은 내가 캄보디아에 온 지 10년이 .. more
#11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11 드러내심 1994 년 1월 나는 싸이판 에서 살고 있었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오후예배 가기를 기다리며 벽에 기대어 좀 쉬고 있었고 아이들은 옆집의 아이들과 같이 방안 침대 위에서 점프를 하며 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섭게 흔들렸다. 얼른 아이들을 불러 식탁 밑으로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했다. 집이 바다. 위에 있는 배 모양으로 좌우로 심하게 움직였다. 그러니까 온 땅이 그렇게 흔들린 것이었다. 그것은 한 30 초 동안 지속되었는데 지극한 공포를 느꼈다. 땅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막연히 믿어 왔는데 그 믿음이 깨지면서 마치 물 위에서 흔들리는 배처럼, 땅도 그렇게 흔들린다는 것을 경험했을 때, 그로부터 오는 두려움이었다. 어떤 무서운 강도를 만났다거나 무서운 영화를 봤을.. more
#10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10 주님 다시 오심 1999 년, 새천년을 한 해 앞두고 여러 국가에서 많은 걱정을 하였다. 소위 Y2K 라고 불리는 컴퓨터 대란이 일어날 것이다. 종말이 다가왔다. 하는 소문들이었다. 내가 파송받은 싱가폴 교회에서도 1999 년 교회 캠프주제를 'count down' (카운트 다운)으로 정했다. 그리고 그 전해 1998 년에는 Total Mobilization (총동원)이었다. 캄보디아 농촌을 다니면서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 그들도 어디서 들었는지 내년이면 종말이 오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 당시 캄보디아는 예수에 대하여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캄보디아에도 복음이 전하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종말은 올 수 없다고 대답해 주었다. 누구나 사람들은 종말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 20.. more
#9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9 똘슬라잉 학살 박물관 ≪뚤슬라잉 학살 박물관≫ 야자수 둘러싸인 아름다운 교정 현대식 건물 그 향긋한 여고 교실에 철조망 둘러치고 순박한 사랑 불러다가 자물쇠 채워 놓고 철봉, 드 림, 각종 연장으로 숱한 사람 고문하고 죽였다 향긋한 세상, 낭만의 인생, 풍요의 거리에 이제 곧 철조망이 둘러 치이고 순박한 불신자 불법자 모아놓고 영원의 자물쇠 채우고 불과 유황으로 고문하고 또 고문하고 영원히 고문 할 곳 캄보디아에서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곳은 앙코르 와트나 뚤슬라잉 학살 박물관이다. 앙코로 와트는 크메르 민족에게는 최고의 가치요. 영광으로 인식되어 있고 뚤슬라잉은 크메르 민족에게 가장 치욕스럽고 슬픈 곳으로 되어있다. 1975 년 수도 프놈펜으로 입성한 크메르 루즈는 이 뚤슬라잉 학교를 정치범 수용소.. more
#8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8 론롤과 크메르 루즈 '빠일른'이라는 사역지는 나의 이곳 캄보디아 사역에 있어서 가강 큰 기억에 남는 일이며 또한 가장 독특한 사역지였다. 캄보다아에서 가장 험악한 곳. 또한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곳, 그러기에 또한 문이 열리고 복음이 전해지고 중생을 하게 되면 가장 강한 군사가 될 수 있고 가장 밝은 곳이 될 수 있다. 론롤 정권의 부패에 반기를 들고 일어섰고 또 민중들이 가세했고 강한 조직력으로 부패한 정권을 몰아내었다. 그리고는 피의 숙청을 단행하고 화폐를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모든 공장을 폐쇄하고 자동차도 폐기하고 상업도 없애고 모든 지식인, 종교인, 전직 공무원들을 죽이고 오직 농업으로만 사회 평등을 실현하려 했던 광신적인 이상 주의자들이었다. 대규모로 농토를 조성하고 거대한 수로를 만들고 생.. more
#7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7 꽃솔(Kosal) ≪반석≫ 반석은 생수를 찾는 이에게 언제나 그 신선함을 주기 위해서 그 외로운 반석이 되어 있어야 한다 반석을 깨는 자는 생수를 마실 것이요 생수를 마시는 자는 반석의 고마움을 간직하리라 그 강도가 잡히고 나서 한동안 빠일른 교회는 평안을 유지했다. 나도 이제 밤에 잠을 좀 편하게 자게 됐다. 근 1 년 동안 크고 작은 협박, 테러 위협, 침투, 폭발물 장치 등으로 심적 고생이 심했었다. 언제 무슨일이 터질지 몰라 불안했었다. 그런데 2004 년 어느 날 그 사역자의 동역자인 꽃솔이 살해당했다는연락을 받았다. 얼른 빠일른으로 올라가 추모 예배를 드렸다. 그 당시 꽃솔은 27 세로 약혼녀도 있었고 경찰관으로서 또한 우리가 세워 놓은 오따바우 학교의 1학년을 가르치고 교회 일을 돕던 .. more
#6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6 빠일른 ≪빠일른(Pailin≫ 빠일른에서는 어른도 아이도 남자도 여자도 개울가에서 웅덩이에서 온종일 빨래를 한다. 몸의 반은 물에 담그고 윗몸은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흙을 비비고, 또 비비고, 물에 씻고 씻은 빨래를 자세히 드려다 본다. 붉은 노을이 탈 때까지 반짝이는 큰 조각을 찾을 때까지 한번 행운을 잡을 때까지 끊임없이 빨래를 한다. 이윽고 별들이 반짝인다. 적막한 산 위에서 피곤한 육체들의 지붕 위에서 그 개울가 그 웅덩이 위에서 그리고 그 허망스럽디 순진한 이 사람들의 꿈보다도 더 높은 곳에서 무수한 별들이 그들의 보석이 되어 빛난다 빠일의 별들은 이 도시 위에서 유난히 반짝인다 빠일른은 킬링필드의 주범들인 크메르 루즈의 마지막 요새였다. 빠일른 도시의 땅 밑에는 많은 보석들이 묻혀있다. .. more
#5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5 영적 환경변화 캄보디아라는 극히 빈곤하면서도 파괴된 나라에게는 제일 먼저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필요했다. 1997 년에는 캄보디아가 국민소득이 300 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뢰로 다리를 잃은 많은 사람들, 전쟁으로 많은 남자들이 죽고, AIDS 는 창궐하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NGO, 단체, UN 등에서 그들의 기본 필요를 채워 나갔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반쯤 죽게 된 사람의 경우와 비슷했다. 누군가가 도와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파송교회인 싱가폴 LIFE B-IP 교회도 그 한 교회에서 3 년간에 걸쳐 10 개의 컨테이너에 구호품을 가득 실어 캄보디아에 보냈다. 그 구호품을 나누어 주는 것도 사역의 한 큰 부분이었다. 의례껏 복음사역.. more
#4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4 환상 킬링필드로 유명한 캄보디아, 그 곳은 많은 인재들이 크메르 루즈에게 희생되었고 기독교도 거의 대부분의 신자와 지도자들이 희생되었다. 인도차이나 5 개국 중 가장 비참하고 AIDS 최다 보유국으로 세계에서 몇 번 째가는 최빈국으로 남아있었다. 훈련 받은 말씀 사역자도 거의 찾아 볼 수 없었고 전국에 건물을 가진 교회는 100 개 미만으로 기억된다. 한인선교사도 열 댓 가정 정도였던 것 같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땅.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킬링 필드로 인하여 인도차이나 5개국 불교 국가 중에서 가장 복음에 희망적인 나라가 되었다. 앙코르 와트라는 현존하는 최대 불교 우상이 존재하는 불교의 종주국이라 자부할 수 있는 이 나라를 하나님은 크게 치셨다. 그 토양을 바꾸기 위해 캄보디아 역사이래 유.. more
#3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3 기도 선교지에 나왔지만 나는 기도라는 것을 잘 몰랐다. 신학교에서 배운 기도, 그리고 내가 선교지에 나오기 위한 기도, 나의 필요를 채워 달라는 기도, 아프면 낳게 해 달라는 기도,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 달라는 그런 기도가 거의 전부인 줄 알았다. 말할 수 없는 탄식(혹은 신음)으로 하시는 성령님의 기도는 그저 성경에 기록된 것으로만 존재했고 나는 그것이 살아서 역사한다고는 거의 생각지 않았다. 그러한 성령의 기도 없이도 무난히 사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역지에 나온 지 채 일년이 되지 않아 그러한 기도가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게 하셨다. 1998년 아마 5월경 나는 싱가폴 교회에 사역 보고를 하고 프놈펜에 도착하여 밤이 늦어 캄뽕솜에 내려가지 못하고 어느 guest house 에서 .. more
#2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2 싸이판, 싱가폴 그리고 캄보디아 싸이판은 파라다이스 같은 섬이었다. 나는 1988 년경 괌, 싸이판을 다녀온 후, 이제 한국의 것을 정리하고 싸이판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도 처음 구입 할 때보다 많이 올랐고, 더 이상 한국에서는 나의 자본으로 뻥튀기 할 수 있는 기회는 없는 것 같았다. 그것을 팔아서 모두 싸이판으로 옮겼다. 그 곳에서 새로운 투자 내지는 투기를 계획했다. 그래서 1989 년 그 곳으로 이주를 했다. 그때만 해도 그곳에 한국인은 거의 없었고 거의 일본 관광객들뿐이었다. 바다 색깔은 원시 자연 그대로의 신비로운 색을 띄었다. 이곳에서 한 번만 더 잘 하면 평생 편하게 휴양을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4 년 반 만에 나는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more
#1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1 선교에의 회고 2013 년 5월 26 일 주일, 대구의 어느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한국을 방문해 선교보고도 하고 필요도 알리고 평소 전하고 싶었던 말씀도 전하고 하는 것이 지난 16 년간의 선교사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로마서 8장 26 절의 말씀으로 '이와 같이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는 내용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어느 집사님이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에 대해 경험한 것을 이야기해 주셨다. 그 내용은 어느 날 기도를 마치고 막 잠이 들었는데 다른 자기가 몸속에서 나타나 자신을 위하여 연이어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폭포수처럼 강력하고 본인이 평소 생각지도 못했던 내용을 막 쏟아 붓듯이 기도하시는데 자면서도 그 내용이 너무나 옳은 것이어서 계속 아멘, 아멘하였다고 한다. 나중엔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