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cut to Content

Unspeakable Groaning

#12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반응형

#12 2007년 7월 25일

 

2007 년 들어 나는 기도제목이 하나 있었다. 1907 년 평양 대회개운동으로 인한 부흥의 역사가 꼭 100 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2007 년 정초부터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와 선교에 어떤 메시지를 주시기를 원했다. 이 기도제목은 선교지 뿐 아니라 한국교회를 해서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 두 달 기도하다 아마 그것을 좀 잊고 지내고 있었다. 2007 년 7 월, 8 월은 유난히 단기 선교팀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었다. 한 팀이 나가면 바로 다른 팀이, 어떤 그는 세 팀이 같은 기간에 몰려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때는 집사람이 한 팀, 내가 한 팀을 맡고 한 팀은 그 팀들 스스로가 알아서 사역을 했다. 그리고 2007 년은 내가 캄보디아에 온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나는 2006 년부터 캄보디아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말은 못 하지만 캄보디아 성경이라도 일독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서 일고 있었다. 참 힘드는 일이었다. 한 페이지를 읽는데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그 복잡하게 생긴 글자들을 하나씩 하나 독하듯 일어 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이에 선교사로 나왔고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10 년이 되어 캄보디아 성경 일독도 하지 않으면 부끄러울 것 같아 작심을 하고 하루에 한 두 페이지씩 성경을 크게 복사하여 읽어 갔었다. 그리고는 2007년 7월에 들어서면서 열왕기 상.하만 읽으면 거의 일독하는 때가 되어갔다.

7월 24 일. 그 날 저녁 나는 메콩강이 바라다보이는 프놈펜의 파라곤 이라는 조그마한 호텔에서 미국에서 온 선교팀을 보내고 다음날 오는 다른 선교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호텔 방에서 캄보디아 성경을 읽고 있었는데 열왕기상 14 장을 읽을 차례가 되었다. 그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선교팀 23 명이 탈레반에 붙잡혀서 생사를 알지 못하고 온 세계 메스컴이 이 일을 보도하고 있었다. 캄보디아 동역자들도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 자기네들도 한국선교팀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나도 뉴스 시간마다 새로운 것이 있는지 들어봤다. 그리고 나서 또 계속해서 열왕기상 14 장을 읽어 내려갔다.

여로보암의 아이가 아파 선지자에게 물으로 보내니 이 아기가 죽으리라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아파왔다. 더 이상 읽지 못하고, 아래층에 있는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쳐 들어온다. 천둥, 번개가 메콩강으로 막 번쩍 번쩍하며 떨어진다. 음식을 겨우 먹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한 참을 기도를 했다. 마음이 심란했다. 그리고 다음날 한국 선교팀을 인솔하던 목사님이 탈레반에 의해 살해됐다 뉴스가 나왔다. 열왕기상 14 장을 또 읽어 내려갔다. 이 열왕기상의 이야기와 23 명의 한국인 인질사건. 그리고 그 인솔 목사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가 있는가? 여로보암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가서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했다. 베델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곳에서 자기네들을 인도한 신이 있는 곳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백성을 그릇 인도했다. 또 레위인이 아닌 사람으로 제사장을 삼고 천한 사람으로 그 직분을 맡겼다. 절기의 날짜도 임의로 바꾸었다. 아마도 그렇게 함으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유다로 돌이키지 못하게 하고 자기네들이는 대로 북 왕국을 이끌어 가려고 한 것 같다. 이 여로보암이 지은 3가지 죄와 한국교회가 이제껏 행하여 온 것과 비교해 보았다.

 

첫째. 과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백성인가? 아니면 개 교회 중심의 혹은 교단 중심의 예배인가?
우리는 어쩌면 개 교회를 우상으로 삼고 그것을 예배하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영적 예루살렘은 어디에 있는가? 그 곳으로 가는 길을 차단해 놓고 교회라는 이름 앞에 모든 헌신을 요구해오지 않았는가? 동네 동네마다, 상가들마다 교회는 많아도 참 된 예배는 실종되어 왔다. 이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터지고 2008 년도에 BBC 방송의 후원을 받은 독일 저널리스트가 과연 한국 선교사들은 어떻게 선교를 하는지 취재를 하러 캄보디아에 왔다. 여러 명을 인터뷰하였는데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왜 그러한 위험한 여행 금지된 구역에 한국 선교 팀들이 가는가? 왜 한국교회는 아주 촘촘히 100m 간격, 50m 간격으로 예배당이 있는가? 독일에서는 여러 개 예배당이 있으면 마을에 중심 되는 예배당만 놔두고 나머지는 다허물어 버렸는데 왜 한국은 그러냐는 것이었다. 그 답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의 잘한 점도 많지만 잘못한 점도 많이 있다. 나는 서구의 젊은이들이 주일 날 교회는 안 가고 축구장으로 몰려다니는 것 보다 위험하지만 선교여행 떠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또 예배당 문제는 얼버무렸다. 그러나 성령님은 한국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개신교에서 다른 교회의 성도와 성도의 교통이 없이 드려지고 있는 예배를 어떻게 생각 하실까? 선교지마다 외롭게 자기교회를 세우고 자기선교사 파송해서 자기 사역 열심히 해나가는 한국선교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북 이스라엘 따로, 남유다 따로, 이 교회 따로 저 교회 따로, 이 선교사 따로, 저 선교사 따로, 제 각기 자기 사역 자기 교회에만 열중을 한다.

 

둘째, 제사장을 아무나 세운 것도 큰 죄이다. 신령하고 순수하고 겸손한 자를 목사로 장로로, 선교사로, 존경하는가? 아니면 학력이나 카리스마나 경제력이나, 조직력에 능한 자를 중요시 하는가. 하나님의 소명인가, 아니면 유행에 따른 인기에 편승한 직업 선택인가. 목사나 선교사는 고생과 희생과 고난의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것은 세상적 영광과 존귀의 직업이 되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직분자를 한 때도 성령이나 말씀 외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한다..선교지에도 어떠한 동기로 나오는가? 선교할 지역을 정할 때도 어떠한 로 그곳을 정했는가? 나의 직분도 나에게 꼭 알맞은 직분인가 아니면 너무 크고 무거운 옷처럼, 거추장스럽고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직분인가? 선교는 철저히 성령의 사역이다. 물론 처음에는 교회나 파송기관의 파송을 받고 선교지로 나오지만, 선교지에 나와서는 이 매일매일 파송하시고 인도 하시는 소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어떤 선교 정책의 법에 따라 그 낡은 울타리 안에서 맴돌다 보면 어느새 성령님은 빠져나가고, 적군 좋은 일만 하며 속고 있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선교 나와서 우군은 해치고 적군 이롭게 하면 그 심판 날에 받을 형벌은 엄청 가중될 것이다.

셋째, 절기를 임의로 바꾸듯, 모든 성도들이 기도하고 신중히 결정된 사항들이 편의적으로, 어떤 때는 특정 계층의 이해에 따라 쉽게 바뀌어 버린다. 오랜 기도 끝에, 성령의 감동에 따라 교회의 정책으로 행하는지, 아니면 인본주의적인 발상에서 특정 이해집단의 눈치를 봐가며 성령의 소리를 소멸하며 해 나가는지 또한 심각히 생각해 볼 일이다. 선교정책에도 임의 적인 것이 많다. 보통 담임목사님이 새로 다시면 선교정책도 바뀔 때가 많다. 한국교회는 선교를 많은 나라, 많은 지방에서 새로 시작하지만 또 조용하게 그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많다. 선교사들도 교회 건축헌금이 들어오면 그것을 하나님이 그곳에 교회를 시작하라는 뜻으로 받아드릴 때가 많다. 나도 그렇게 해서 교회를 많이 지었다. 그리고 선교사끼리의 경쟁심도 많다. 더 많은 헌금, 더 많은 교회건축을 은근히 과시한다. 나 자신도 후원이 줄어들면 위축이 되고 힘이 빠지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러나 나중에 이러한 과시적 선교로 인하여 나타나는 후유증은 보통 선교사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여로보암의 3가지 죄,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로 그간 물질주의가 팽배하면서 이러한 죄를 오랫동안 지어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인한 이 일과 열왕기상 14 장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평양회개부흥 100 주년을 기해 한국교회와 선교에 대하여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은 모든 믿는자의 몸 속에서 매일같이 죽는 날까지 진행 되는 일이다. 자신의 믿음을 견고히 하고, 교회를 교회답게 세워나가고 천국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이 소리에 참으로 민감해야 하며, 또 들은 대로 행하여야 한다.

 

 

≪초가집≫

5 월인데 연일 비가 내리고

흙 실은 트럭들은 연이어 부두 공사장으로 가고

길 옆 초가 지붕 밑에서 애기가 연방 울어댄다.

허리 굽혀 들어간 초가에 어른은 없고

어린 누나가 옆구리에 애기를 차고

남아는 흔들 그네에 누워 놓고 개 몇 마리 닭 몇 마리

 

판지마루 그 위에 모기장 그 외엔 살림이 더

 

없는 듯하다. 그칠 줄 모르는 애기의 울음에 

 

이 소녀의 고심도 빗방울과 같이 흙탕길 위에 

 

쏟아져 내린다

 

 


≪빠이끄롱 마을≫

 


끝없는 벌판, 그 사이로 이리저리 파놓은 수로들

 

작은 엔진을 단 통통배 이국 손님들 싣고 달릴때

 

먹구름은 저 멀리서 몰려오고, 버팔로, 오리들

자기 땅, 자기 물에서 한가히 놀고

간신히 비를 피해 아이들 가득한 교실에 왔다

찬송을 시작하자 쏟아지는 폭우

양철지붕 쳐대는 굵은 빗방울, 그 속의 찬양 소리 

 

망망한 대지, 막막한 사람들

그 속에서도 어린이는 자라고 그 꿈은 커가고

 


≪소몰이≫



 큰 소 허벅지까지 밖에 안오는 아이 둘이

회초리 하나씩 들고 중절모 하나씩 눌러 쓰고

형을 따라 소몰이를 간다

엄마 소, 아기 소, 검은 소, 허연 소

뿔이 앞으로 난 소, 꼬부라진 소

소 데리고 이 산 저 산 물가도 가고 수영도 하고

말 안 들으면 엉덩이를 한 대씩 때리기도 하고

고삐 잡아 끌고 딴 데 못 가게하고 또 끌려가기도 하고 

 

온종일 소들과 놀아야 하는 오쁘람 마을 소년

 

 

≪스마따잉 교회≫

 


아늑한 예배당 안 열 명 남 짓 어른들이

 

예배를 드릴때 건너편에서 어린이 찬양

 

소리들려오고 창밖에 아저씨 담배연기

복도엔 누렇게 친구 개 발자국 소리

뒷 자석에 앉아 가지 않고 재잘거리는 아이들

 

의족한 관리인이 힘들게 일어나 조용하게 하고 

 

강당엔 어린 신학생이 힘들게 설교하고 있다



≪갈대≫



기온이 뚝 떨어진 캄뽕솜 들녘

담장보다 높이 자란 갈대의 계절

한 해의 기다림을 하얗게 내뿜고

여심인양 환희의 님을 기다린다

바람이 불고 또 날이 가고

비가 내리면

저 키큰 처녀는

그 익숙한 기다림 속으로

고개를 떨구운다



≪Vision≫



새 천년이 시작되는 2000 년 1월 1일 0 시
시드니에서 수많은 아름다운 축포, 불꽃을
하늘에 대고 쏘아댄다.
마치 주님 오실 하늘 길을 예비하듯

그리고 일년이 지난 2001 년 2월 1일 미국 쌍둥이
빌딩이 어이없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잠에서 깨어 흩어져,
남은 추수 들녘에 복음을 끝까지 전하라고

그리고 일년이 지나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리고
너무나 대견스럽게 어려운 경기를 은혜로 이기고
붉은 인파가 환희로 하나로 어우러졌다.
마치 천국에 구속 받은 사람들이 환호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