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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eakable Groaning

#7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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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꽃솔(Kosal)

꽃솔(Kosal) 형제

≪반석≫

 


반석은

생수를 찾는 이에게

언제나 그 신선함을 주기 위해서 

 

그 외로운 반석이 되어 있어야 한다 

 

반석을 깨는 자는 생수를 마실 것이요

 

생수를 마시는 자는 반석의 고마움을 

 

간직하리라

 

 

그 강도가 잡히고 나서 한동안 빠일른 교회는 평안을 유지했다. 나도 이제 밤에 잠을 좀 편하게 자게 됐다. 근 1 년 동안 크고 작은 협박, 테러 위협, 침투, 폭발물 장치 등으로 심적 고생이 심했었다. 언제 무슨일이 터질지 몰라 불안했었다.

 

그런데 2004 년 어느 날 그 사역자의 동역자인 꽃솔이 살해당했다는연락을 받았다. 얼른 빠일른으로 올라가 추모 예배를 드렸다. 그 당시 꽃솔은 27 세로 약혼녀도 있었고 경찰관으로서 또한 우리가 세워 놓은 오따바우 학교의 1학년을 가르치고 교회 일을 돕던 신실한 청년이었다. 그는 교회에서 성경을 배우고 거듭나 마을마다 다니며 전도하고 주말에는 약혼녀 농장에 가서 일도 해 주고 교회가 핍박을 받을 때 총을 가지고 와서 사역자와 같이 밤에 자며 교회를 지키고 하던 사람이었다. 그렇데 어느 날 불의의 사람들이 저녁 때 그를 불러내어 숲 속으로 데리고 가서 도끼로 머리를 쳐서 죽이고 숲 속에 버렸다고 한다. 한 일주일 쯤 지나 지나가던 행인이 악취가 나 보니 사람이 죽어있고 경찰에 신고해 꽃솔의 시신을 찾게 된 것이다. 누가 범인인지 제대로 수사도 이루어지지 않고 평소에 핍박했던 그 사람들이 배후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남기었다. 꽃솔이 살해되기 전 그는 경찰 상급자로부터 교회에 더 이상 나가지 말 것을 종용받았다고 했다. 월급이나 쌀, 피복 배급도 근 1년이나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가 사표를 내려 했으나 수리되지 않았다고 했다. 살해 당하기 한달 전쯤인가 우리 KBS (Kompongsom Bible School) 에서 해마다 8 월에 개최되는 Camp 에도 참석 했었다. 캠프를 마치고 돌아갈 때 우리는 그에게 전도지 한 박스를 주어서 빠일른에서 사용하라고 했다. 그는 돌아가는 도중에 그의 고향 마을에 들러 그 곳에서 벌써 전도지를 많이 사용하고 어머니에게 예수를 믿을 것을 전도했다고 한다. 그는 전도에 열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추모예배에 참석한 꽃솔의 친구들은 말하기를 꽃솔은 예수 믿기 전에는 정말 탕자와 같은 사람이었는데 예수 믿고 완전에 180 도 바뀌었다고 했다. 꽃솔의 약혼녀도 꽃솔은 신실하고 충성된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는 빠일른 시청을 찾아가 강력히 항의했다. 여러 나라에서 email 로 보낸 편지들을 전달했고 캄보디아를 도우려는 우리의 모든 활동이 이렇게 살인이라는 것으로 위협받는다면 여러 나라에서 그 도우려는 계획을 취소할 것이고 결국 빠일른 지방에도 불리하게 될 것이 기 때문에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회를 잘 보호해 달라고 당부했다. 2004 년 그 일이 있고 지금까지 별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평온한 가운데 사역이 확장되었으며 100% 크메르루즈 마을인 보후이 마을에도 초등학교가 하나 더 서게 되었다.

 

오따바우 학교 수업 중 꽃솔형제

 


우리 깜뽕솜 신학교에도 그를 기념해서 큰 돌로 꽃솔 기념비를 세웠다. 캄보디아에 그러한 청년이 있었는 것에 대해 감사했고 자랑스럽다. 분명 하나님은 그의 죽음을 기쁘게 받으셨으리라. 이 살인자들의 도시에서 주를 위해 피 흘림이 참 고귀한 일이다.

그리고 그 해 2004 년 12 월 26 일 우리는 빠일른 시내에 교회를 잘 지어 헌당식을 하게 된다. 이 날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날이다. 그 핍박 끝에 어쩌면 그 열매로 세워진 교회이다. 바로 그 날 깜뽕솜에서는 3000 명 정도가 KBS 에 모여 크리스마스 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바로 그날 우리가 헌당식 하고 크리스마스 행사를 하던 아침에 인도네시아에서는 큰 쓰나미가 왔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큰 메시지였다. 이제 이 살인자들의 도시 빠일른에서도, 그리고 이 불교국가인 캄보디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는데 불교의 발생지 스리랑카, 힌두교의 인도, 무슬림의 인도네시아, 향락 관광도시인 태국 푸켓에 큰 바닷물로 경고 하셨다고 본다.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웠으니 어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라” 난생 처음 보는 그러한 큰 물결, 어떻게 보면 우리 사역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웠던 날. 그 암흑의 도시에 하나님의 교회가 우뚝 서고 승리의 깃발을 꽂고, 일시에 이 불교의 땅에서 3000 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세례식, 연주, 예배 등으로 기뻐하며 찬양하며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바로 그 날, 그 시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큰 재앙의 심판이 닥칠 줄은! 기쁘면서도 두려운 날이었다. 그 때 나는 빠일른에서 헌당식을 하고 프놈펜으로 갔고 집사람과 3 명의 아이들을 깜뽕솜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하고 프놈펜으로 와서 우리는 프놈펜에서 만나 TV 를 보며 쓰나미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나는 쓰나미라는 단어를 전혀 들어보지 못해 아이들에게 인도네시아 쓰나미섬 부근에서 큰 해일이 일어났다고 설명해 줬더니 아이들은 쓰나미가 섬 이름이 아니고 해일이라고 나에게 교정해주었다. 그 당시 아이들은 싱가폴에서 모두 공부하고 있었다. 그 때 우리는 5명의 가족이 함께 만났고 그 이후 8년 이 지나서야 (2012 년) 또 한 번 5 명이 다 같이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큰애는 한국에서 지금 군의관으로 복무 하고 있고, 둘째 애는 한 살 때 한국을 떠나와서 싸이판, 싱가폴, 캄보디아에 살면서, 싱가폴 국적을 가지게 됐으며 그곳에서 대학을 다니며 막내는 미국령 사이판에서 출생해서 미국 국적이어서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다.

추모예배 때 꽃솔 어머니도 빠일른에 오셔서 참석했다. 싱가폴에서 보낸 조의금을 꽃솔 어머니와 약혼녀에게 전달했다. 그 이후 호주 목사님의 도움으로 꽃솔 장학회를 만들어 일년에 한번씩 여러 학교에서 성적 우수자들을 초청해 부모들과 관계자들과 함께 식사를 같이 하며 장학금을 전달했다.

참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이름, 꽃솔

 

 


≪오따바우 수업≫

 


망고나무로 깎아 만든
구멍이 이리저리 난
책상에 앉아 오따바우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

파랑개비를 후후 불며
라면땅을 하나씩 입에 넣으며
볼펜으로 엘굴에 그림을 그리며
임시로 만든 교실에서 임시 선생님과
오전수업을 하고 있다.

이윽고 선생님이 질문을 한다
아이들의 손이 모두 하늘 높이 올라간다

한 손으로 파랑개비를 들고
라면땅을 곧게 검어 쥐고
한 손으론 계속 얼굴에 그림을 그리면서

더욱 더 높이 다른 손을 치켜든다

초롱 한 눈동자들은
손들의 놀이와는 관계없는 듯

수업을 자신하는 거센 항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