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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eakable Groaning

#5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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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적 환경변화

 

캄보디아라는 극히 빈곤하면서도 파괴된 나라에게는 제일 먼저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필요했다.
1997 년에는 캄보디아가 국민소득이 300 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뢰로 다리를 잃은 많은 사람들, 전쟁으로 많은 남자들이 죽고, AIDS 는 창궐하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NGO, 단체, UN 등에서 그들의 기본 필요를 채워 나갔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반쯤 죽게 된 사람의 경우와 비슷했다. 누군가가 도와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파송교회인 싱가폴 LIFE B-IP 교회도 그 한 교회에서 3 년간에 걸쳐 10 개의 컨테이너에 구호품을 가득 실어 캄보디아에 보냈다. 그 구호품을 나누어 주는 것도 사역의 한 큰 부분이었다. 의례껏 복음사역은 이 구제사역과 맞물리게 되었고 이것은 나중에 큰 후유증으로 남게 된다. 분명 그 당시 성령의 탄식하심은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었다. 가난한자, 병든 자. 그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시골에는 교회가 전무했고 그러한 마을마다 교회건축이 필요하다고 하면 금방금방 헌금이 들어왔다. 나무 값도 싸고 목조로 간단하게 예배당이 필요한 곳마다 땅을 매입하고 건축에 들어갔다. 그러고 사역을 시작한 지 3년만에 7 개의 목조 교회를 지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녔고 신학도 외국에서 했기 때문에 한국에 아는 교회가 거의 없었다. 사역 초기에는 거의 장모님이 다니시는 교회나 처남이 다니는 교회, 처형이 다니는 미국 한인교회, 처제, 동서들이 다니는 교회나 교인들이 선교를 후원해 주었고 건축헌금도 했다. 아직 신학교 졸업생들은 배출되지 않았고 그 마을에서도 담임 사역자는 찾을 수 없었다. 예수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는데 사역자라는 말은 있을 수 없었다.

매일 오전은 신학교 수업을 하고 점심 먹고는 봉고로 학생들을 그 마을 교회마다 한 명씩 보내어 가르치게 하고 또 그 학생들을 태워 캄뽕솜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하면서 교회라는 것이 어떠한 곳인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리며 복음의 씨앗을 뿌려 나갔다. 그 후에 졸업자들이 점점 배출되면서 전국적으로 교회 개척을 해 나갔다. 그리고 파송하고 후원을 연결해주고 예배당을 지어주고 이렇게 해서 오늘 날까지 사역해 오고 있다. 물론 아직 자립한 교회도 없고 자립의 의지를 보이는 교회도 없는 듯 하다. 이것은 나에게 큰 부담과 기도제목으로 다가왔다. 언제까지 외국 교회의 후원으로 신학생들을 무료로 가르치고 무료로 먹여주고 언제까지 교회사역자들에게 후원을 해줄 것인가. 그로 인해 생기는 의타성, 안일한 교회운영, 기도부족, 생명력 없는 교회. 이러한 많은 문제들에서 우리 선교사들의 책임이 큰 것을 통감한다. 다른 선교사님들도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사역을 하고 계신다. 분명 사역 초기에는 그러한 절대 빈곤, 절대 무기력 속에서 선한 사마리아와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했다. 성령님은 그것을 허용하셨고 또 많은 부분 기쁘시게 받으셨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가족도 외국교회의 후원이 중단되면 가족생활이나 교육이 안되는데 캄보디아 사역자 들도 자립을 기대한다는 것은 시기상조지만 그래도 이제는 대책이 나와야 하고 하나씩 실행에 옮기려 한다. 이제는 성령님은 어떠한 부분을 우리 속에서 또한 캄보디아 사역자 속에서 탄식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까? 이 부분이 많이 궁금해진다.

이제는 캄보디아도 국민소득이 많이 올랐고 부자들도 많이 생겨났고 거리에는 놀랄 만큼 고급 차들이 많이 보인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도 놀란다. 우리가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 때도 많다. 물론 시골은 아직 빈곤하고 필요들이 많다. 땅값도 많이 올라 땅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잠재적인 부를 가진 셈이다. 이러한 시기에는 여기에 맞는 선교가 이루어져야 한다. 구제로 인하여 많이 퇴색되어버린 복음이 제 빛을 내어야 할 때이다. 진리가 진리 되게, 교회가 교회되게, 말씀대로 행하며 성령으로 어두움의 세력과 싸워 나가고 바야흐로 믿음의 선한싸움을 싸워 나가야 하는 시가가 왔다. 죄가 죄인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부에 법이 있어도 법을 시행하지 않고 모든 것이 변칙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어 왔다. 심지어 오토바이를 훔친 자를 현장에서 잡으면 그 현장에 있는 시민들이 막대기로 그 자를 때려 죽여도 경찰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사람을 쏴 죽여도 돈을 주면 풀려났다. 우리 신학생 중에도 그런 학생이 있었다. 자신이 전에 총으로 사람을 쏴 죽였다고 했다. 그러나 두목이 와서 돈을 주고 자신은 몇 달 후 풀려났다고 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교회를 세워도 교회가 성립되지 않는다. 은혜를 이해할 수 없다. 은혜란 죄의 확신, 그리고 그에 대한 그리스도의 대속을 이해해야 하는데 법이 없으니 죄라는 것도 없고 죄가 무엇인지 모르니 죄의 확신도 없고 그러니 회개도 없고 죄에 대한 대속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구약에서 모세의 율법을 통하여 죄를 가르치지 않았으면 신약의 은혜라는 말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된다. 

 

즉, 죄를 가르치는 것이 더 급선무였다. 무엇이 죄인지를 알려주고 그 죄를 지으면 형벌을 받고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했다. 도둑질하고 살인을 해도 그것이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 그렇게 했기 대문에 크게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고 킬링필드 당시 사람 죽이는 것은 동물 죽이는 것과 같이 생각 했으므로 그러한 영향이 계속 그들의 마음속에서 그들의 죄 된 행위를 정당화 나갔다.

이제는 이 나라도 법이 점점 서가고 죄를 지으면 교도소에 가야 되고 거기서 빠져 나오는 것이 점점 힘들게 되어있고 언론이나 감시의 눈도 점점 예리해지고 여론도 무시 못하는 요소가 되어가고 국제 대회도 많이 유치하면서 국제적인 기준으로 모든 것을 맞추려 한다. 사람들도 더욱 교육에 열중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것도 배운다. 교회에서도 그 동안 성경을 많이 가르쳤고 성경의 기초적인 지식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이해하는데 좋은 토양이 형성된 것이다. 성령님은 이러한 토양 위에서 이제는 거듭난 교인과 진리 위에선 교회를 찾으실 것이고 말씀대로 행하며 굳게 서가서 지혜와 축복을 활용하여 교회자립도 이루어 나갈 것을 바라실 것이다.

현지교회 자립뿐 아니라 선교사의 재정적 자립도 이제는 심각히 받아들여져야 할 시기가 왔다. 물론 재정적으로 완전히 자립해야지 건강한 교회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한국교회의 경우에도 중대형도시교회들이 수많은 농어촌 미자립 교회를 돕고 있는 실정이고 아직 많은 캄보디아의 농촌교회는 빈곤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현지교회는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하게 되었고 나중에 교회에 출석 할 때도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도움을 기대하면서 교회에 나오고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현지인 담임목사는 사역하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되어갔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선교사는 그 책임을 동감한다. 비록 선한 동기에서 그 사역이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그 운용에 있어서 지혜롭지 못했기 때문에 역효과가 났고 그것을 회복하는데 더 많은 시간들이 소요되고 있고, 구제에 있어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원한다는 것은 황금률이라고 생각한다. 이 원칙을 지키지 못함으로 못함으로 많은 후유증과 고통을 당하였고 또한 덕을 끼치지 못하였다. 또한 국민성도 교회자립과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은 열심히 일하는 민족이지만 돈에 대한 집착도 강하다. 캄보디아인은 열심히 일하지도 않고 돈에 대한 집착도 강하지 않다. 캄뽕솜 성경학교 (KBS)도 신학교 자립책의 일환으로 2002 년부터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하였고 그 중에서 우리맞다고 생각되는 project(자립사업)을 실행해 보았다. 잭프루트, 싸와삽, 망고나무 등 과실수를 대량으로 심었다. 산의 토양도 척박하고 비료도 주지 않았고, 건기에 물도 없고 좀 자란 나무들은 소들이 와서 잎을 먹어버려 대부분의 나무들이 죽어버렸다. 그리고 돼지, 오리, 거위, 소, 염소, 물고기들을 길러 보았다. 소 방목만 현상유지를 했고, 나머지는 별 소득이 없거나 실패로 돌아갔다. 나중에는 다른 곳에 땅을 크게 임대해서 타피오카를 심었다. 너무 멀어 관리가 되지 않아 다 죽어버렸다. 이러한 일로부터 내가 얻은 교훈은 내가 그 방면에 전문적인 경험도 없으면서, 일을 같이 할 경험 있는 사람의 동역도 없이 단지 교회 이루겠다는 강박관념에서 그것을 진행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또 한번 전문인 선교인과 선교인과 말씀사역자가 동역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선교지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너무니 중요하다. 그러나 말씀훈련만 받고 여타 훈련을 받은 것이 없는 사역자는 사역을 나가서는 금방 좌절한다. 사도 바울처럼 자기 손에 익은 기술 하나는 가지고 나가든지 아니면 전문인 선교사가 그 동역해 주어서 그 기술을 전수해 주어야 그 교회가 빨리 뿌리를 내린다.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라쇼 지방에서 여러 개의 유아원을 꾸며놓고 그 곳에서 수입을 얻으면서 그것으로 복음사역을 해  나가는 교회를 보았다. 유아원 시설을 잘 해놓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배우는 아이들도 많았다. 캄보디아에도 많은 아이들이 있고, 이네들도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소득도 조금씩 향상되어 감으로 마을 교회마다 이러한 유아원 시설을 잘해놓고 학비를 받으며 자립을 이루어 나가는 방법도 좋을 것 갔다. 우리도 세워놓은 20 여 개의 마을 교회를 대상으로 적합한 곳부터 이러한 유아원 개설을 기도하고 있다. 마을 교회를 갈 때마다 너무 교회가 조용하고, 사역자들은 힘없이 앉아있고, 활력도 없고, 한 것을 볼 때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하는 생각 뿐이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부분, 즉 유아원 시설을 주는 것은 우리가 해주고, 또 그들로 하여금 잘 운영할 수 있도록 그로 인해 활력 있고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나가야겠다.

 

선교사역은 후원 교회인 외국교회와 선교사, 현지교회 이 삼자의 합동사역이라고 생각한다. 후원이 없어도 안되고, 선교사의 활동이 없어도 안되고, 현지교회의 노력이 없어도 안된다. 선교사의 사사로운 비전과 외국교회의  전통적인 선교 정책과  현지 교회의 안일한 태도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길을 양보할 때 영적인 건실함이 이루어지고 교회자립도 코 앞에 왔다고 생각된다.

 

 


《주님 집》



우리 주님 집은 양철지붕, 

 

빗소리를 더 크게 들려주는 양철지붕 

 

주님 집은 양철지붕

해가 나면 햇볕을 더욱 덮여 주는 양철 지붕

 

우리 주님 집은 나무 집,

나무 틈 사이로 햇볕을 들여 보내는 나무 집

허나 벌레 먹어 점점 살이 떨어져 나가는 나무 집

우리 주님 집은 나무울타리,

벌려진 울타리 사이로 누구나

오고 가는 나무 울타리 집

우리 주님 집에는 갓난 애기도 우는 애기도

어른도 젊은이도

누구나 와서 주님 말씀 듣는

 

마을 가운데 집

 

 



≪교회 관리인≫

 


노란 꽃, 분홍 꽃, 코코낫 심어 놓고

먼저 가셨습니까
띠닛, 띠노, 보파, 안사람 남겨 놓고
먼저 가셨습니까
아내가 불러주는 찬송가 들으며

마지막 숨을 쉬셨습니까

 


헌 나무에 새 못 박아 관 만들고
오일팜(Oil Palm) 큰 농원 지나
물 건너 넓은 꽃 들판가에 관 묻고
겸손하여 봉우리도 없고
지고 갔던 두 긴 막대기
무덤 위에 없어 십자가 만들고
다시 꽃 들판 따라 돌아옵니다

 


새 천년, 마지막 달
초하루, 저녁이 올 무렵
먼저 낙원으로 가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