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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eakable Groaning

#4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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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환상

킬링필드로 유명한 캄보디아, 그 곳은 많은 인재들이 크메르 루즈에게 희생되었고 기독교도 거의 대부분의 신자와 지도자들이 희생되었다. 인도차이나 5 개국 중 가장 비참하고 AIDS 최다 보유국으로 세계에서 몇 번 째가는 최빈국으로 남아있었다. 훈련 받은 말씀 사역자도 거의 찾아 볼 수 없었고 전국에 건물을 가진 교회는 100 개 미만으로 기억된다. 한인선교사도 열 댓 가정 정도였던 것 같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땅.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킬링 필드로 인하여 인도차이나 5개국 불교 국가 중에서 가장 복음에 희망적인 나라가 되었다. 앙코르 와트라는 현존하는 최대 불교 우상이 존재하는 불교의 종주국이라 자부할 수 있는 이 나라를 하나님은 크게 치셨다. 그 토양을 바꾸기 위해 캄보디아 역사이래 유래없는 국난인 킬링필드를 보내고 인도차이나 불교국을 새로 시작 하신 것이다.

그 본격적인 작업은 1997 년 내전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그 내전으로 이듬해 치러진 유엔 감시하의 민주주의 총선에서 훈센 정권이 승리하고, 전국적인 안정이 시작되고, 치안이 잡혀가며 사람들은 비로소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종교의 문이 개방되고 기독교가 물밀 듯이 들어오게 되는 계기가 된다.

1999 년이라고 생각된다. 한국 총신에서 박사과정에 있던 어떤 인도 목사님이 방학을 이용하여 이곳에 강의를 하고 한 달이 다 되어 돌아가시려고 하는데 그 밤에 꿈을 꾸셨는데 추수할 것이 온 천지에 널려있는 넓은 밭에 일꾼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늙은 노파 한 사람만이 그 추수를 하느라 힘도 없어 주저 앉아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추수를 나와달라고 부탁해도 그냥 지나가 버리고 하는 그 안타까운 상황에 있는 꿈을 꾸셨단다.  그 목사님은 나중에 캄보디아로 오셨고 또 많은 인도 나갈랜드 출신 선교사들이 캄보디아로 올 수 있는 통로가 되었고 우리 학교도 그 나갈랜드 출신 교수들이 오랫동안 동역하고 있다.

또 하나의 꿈은, 1999년 마을 교회를 짓고 헌당식을 하러 부산의 부곡교회 목사님 부부가 오셨다. 그런데 교회 허가가 없으니 마을 사람들을 초청하지 못하게 했다. 우리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헌당식이 있기 하루 전날 밤 그 사모님이 선교관에서 주무시다 꿈을 꾸셨는데, 그 헌당식하려는 교회 옆으로 불길이 번지는데 어떤 사람들이 소방 호수 같은 굵은 호수를 가져와 그 불을 끄려고 시도했으나 그 불길은 더욱더 멀리 북쪽으로 번져나가 누구도 끄지 못하는 불길이 되었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환상을 통하여 캄보디아 추수 현장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고 어떻게 진행하실 것인가를 분명히 보이셨다고 생각한다. 그 늙은 노파처럼 힘없이 주저앉아 넓은 추수들판을 바라보며 한탄하시는 것이 바로 그 당시 성령님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이 아니었을까. 또한 성령님은 강력한 불길처럼,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온 캄보디아에서 알곡을 찾으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벌써 그 탄식 속에서 드러내셨다고 생각한다.

일은 정말 벌어지고 말았다. 2000 년도가 넘어서면서 선교사들이 대거 추수현장에 투입되었다. 지금 2013 년에 한국인 선교사만 400 가정이 넘고(1997 년에는 열 몇 가정) 건물을 가진 교회가 100 개에서 열 배, 스무 배가 되고, 필리핀, 인도, 싱가폴, 미국, 심지어 지금은 중국 선교사까지 들어와 추수를 감당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전국적으로 복음의 불길이 번져간다. 그 당시는 '넓은 들에 익은 곡식’ 찬송가를 학생들과 자나깨나 불렀다. '무르 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기회 가기 전에서 추수 합시다.'

동역자가 많이 필요했었다. 그런데 동역자는 많이 오지 않았다. 동역자가 있었어도 또 관계가 금방 어긋나 버렸다. 선교가 미숙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자주 발생했다. 그러나 그 분들도 모두들 각자의 위치에서 큰 일들을 이루어 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나에게 추수 일꾼을 붙여 달라고 떼를 쓰듯이 그 찬송가를 불렀는데 성령님은 가장 적합한 곳으로 그들을 보내셨고, 또 더 많은 선교사들이 캄보디아 땅으로 들어와 전역에 걸쳐 사역하게 하셨다. 동역 관계가 분열되면서 서로에게 상처로 남았지만 복음의 역사는 왕성하게 진행되어 갔다. 그러나 이제 이 선교사 홍수시대에, 그리고 많이 세워져 있는 지방교회들을 바라보시며 성령님이 탄식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현지 교회의 자립에 대해 많은 토론을 하고, 연합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비지니스 접목을 통한 건전한 교회도 이야기 한다. 농업선교, 교육 선교, 교도소 사역, 번역 출판사역, 참으로 많은 세미나, 포럼, 수양회를 가진다. 발제도 하고 논찬도 하고 그것을 통하여 많은 유익한 정보를 얻는다. 그러나 이 시대 지금 성령님께서 주시는 환상은 무엇인가. 십 몇 년 전에 주셨던 환상과 동일한 것인가. 아니면 이제 추수현장 상황이 많이 달라졌으므로 다른 환상을 주시는가. 선교는 처음부터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성령님이 교회에 말씀하실 때부터 성령의 고유의 배타적인, 그분이 전적으로 행하시는 사역이었다. 지방교회들은 한가로이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우리들은 너무 왕성하게 교제하고, 식사하고, 큰 돈들여 모임 갖고 결과를 도출해내고 그에 따른 행동은 미약하고 또 모이고 또 캄보디아사역자 험담하며 즐거워하고, 힘써서 후원 계발하고, 또 그 일하면서 선교사 경력을 쌓아가는 것이 아닌지 이것이 성령님의 탄식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하지만 아무래도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제는 선교의 networking (전략적 협력사역)도 이 시대에 필요한 환상(vision)이다. 즉, 신실한 교회들은, 선교사들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강점을 연합해서 공동의 목표를 이루는 쪽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각자에게 독특한 재능을 주셨기 때문에 각자의 재능대로, 천직을 발견해서 그 직분과 그 위치에서 동역 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작년에 나는 이것을 조금 경험했다. 캄보디아에서 지금껏 사역한 경험을 가지고 이제 막 문이 열리는 미얀마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여 그 땅을 탐사했다. 내가 이제껏 캄보디아에서 해왔던 신학교 사역을 그곳에서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갔다. 수도 양곤에서 버스를 타고 네피도, 까로, 따운지, 라쇼 등 산악지방을 둘러보고 교회를 방문해보고, 신학교도 방문해보고 캄보디아로 돌아오면서 내가 과연 이 미얀마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교회도 생각보다 잘 설립되어 있었고, 신학교도 많이 있었고, 개신교 역사 200 년이 되어가니 캄보디아에 비해 교회가 훨씬 든든히 서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민족의 대부분을 이루는 버마족과 샨족은 복음화 율이 1%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샨 족들은 거의 산악지방에 살고 산이 높아 서로 교통이 불편했고 자연히 복음 전파도 상황이었다.

 

나는 이제껏 캄보디아에서 사용해 왔던 “천국 가는 길”이라는 소책자가 생각났다. 12page 로 된 것인데 캄보디아에 12만부를 인쇄하여 전도로 사용하였다. 미인마 말로 번역되고, 인쇄되어 배포되면 아주 효과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저그러한 부담만 안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방법을 찾아나갔다. 먼저 미얀마 라쇼 지방에서 만났던 미국인 선교사 Breck 에게 이메일을 해서 이 전도지를 버마 말과 샨(Shan) 말로 번역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파일을 보내라고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영어로 된 파일이 없었다. 싱가폴에 물어보니 그 전도지를 제일 처음 영어로 만들었던 Thelma 여사 에게 물어보라 했다. Thelma 여사 에게 물어보니 다시 홍콩 Joyce 자매에게 물어보라 한다. Joyce 가 그 CD 를 보내줘서 우리는 그 파일을 미얀마로 보냈다. 그래서 Breck 선교사는 미얀마 신학교수의 도움을 받아 그것을 번역했다. 그러나 컴퓨터 작업을 하는데 어떤 program 이 없어서 computer 작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미얀마에는 캄보디아보다 그런 면에서 열악했다. 얼른 서울에 아시는 분에게 연락해서 그 프로그램을 Breck 선교사에게 보내주도록 부탁했다. 이윽고 완성된 그 번역 파일이 Cambodia 로 넘어왔다. 집사람이 또 출판을 위해 여러 번 Breck 선교사와 email 을 주고 받았다. 기술적인 면이 서로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완벽한 미안마 말 번역 파일이 넘어왔다. 그러나 출판을 할 재정이 없었다. 이때 Thelma 여사는 싱가폴의 어떤 목사님에게 한 번 연락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그분에게 우리의 목적과 필요를 알리니 그 목사님도 미얀마 선교에 관심이 있으셔서 10,000 권 인쇄할 값을 주셨고 또, 한국 광주의 어떤 교회에서도 10,000 권 값을 주셔서 버마 말로 또 샨 말로 프놈펜에서 출판을 했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 캄보디아 선교사님 몇 분이 미얀마를 방문할 때 일부를 들고 가서 양곤, 라쇼, 따운지등 필요한 교회와 선교사들에게 나누어 주고 왔다. 나와 집사람은 버마 말을 전혀 모르고, 그것을 출판할 여력이 없었지만 다만 우리는 그 필요만 놓고 기도했는데 여러 나라 사람들을 성령님께서 networking(서로 연결) 시키셔서 이러한 전도지가 나오게 하시고 선교에 사용되도록 하셨다.

미국사람, 한국사람, 홍콩사람. 말레이시아사람, 싱가폴사람, 미얀마사람 이렇게 뜻하지 않게 사람들이 연결되고 서로의 힘과 재능과 재정이 동원되고 마침내 공동의 목표를 이루게 되었다. 나는 성령 안에서 우리가 서로의 각자 다른 힘과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연합하면 여러가지 많은 형태의 훌륭한 선교의 모양이 금방 만들어 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이미 공급하셨고, 유능한 인력들을 이미 배치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이 주시는 부담을 가지고 선을 이루려고 한다면 성령님께서 이러한 우리의 소원을 뜻하지 않게 이루시는 것을 경험했다. 이러한 것을 이루어 가는 것은,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 기쁨이요, 선교지의 영혼들에게는 유익이요, 하나님께는 영광이다 선교networking(전략적 동역)은 오늘날 선교의 또 하나의 큰 환상(Vision)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할 때, 그 선교사가 1개월을 선교하든 1년을 하든, 10 년을 하든, 반드시 기도와 금식 가운데 성령님이 지정하여 보내라고 하는 사람, 즉 그 일에 훈련이 되어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을 보내야 한다. 추수 일꾼에 의해서 추수현장이 가장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님이 주시는 vision 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




≪빨래≫



초가집 오두막에 사는 여아 네명이

물 내려오는 웅덩이로 빨래를 왔다.

3살 짜리 애는 코를 흘리며 힘겹게 비비고

2살 짜리 애는 계속 울어대고

8살 짜리 애는 제법 꼭꼭 비비고 짜고

 

4살짜리 애는 잎사귀를 따며 놀고 있다

 

 

≪캄보디아 신정≫

 


참 덥구나

캄보디아 신정이 시작되는 4월 중순

허면 분가루를 따라가며 바르고

도망가고 얼굴과 머리에 묻히고

깔깔대면서 이네들의 신정이 시작된다.

바가지로 물을 뿌리고 비닐 물 봉지를 던지고

 

요사이는 긴 물총으로 물을  끼얹으며

신정놀이는 고조된다

큰 음악소리에 손을 세우고 몸에 붙는

예복을 입고 빙글빙글 슬로우 댄스를

추면서 밤놀이를 한다

물 뿌림이 죄 씻음으로

흰 불이 외로움으로

춤 놀이가 천국소망으로

이네들의 영혼이 갈망하는 바를

이제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