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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eakable Groaning

#8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 캄보디아 에서의 선교 경험 (1997-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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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론롤과 크메르 루즈

 

 

'빠일른'이라는 사역지는 나의 이곳 캄보디아 사역에 있어서 가강 큰 기억에 남는 일이며 또한 가장 독특한 사역지였다. 캄보다아에서 가장 험악한 곳. 또한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곳, 그러기에 또한 문이 열리고 복음이 전해지고 중생을 하게 되면 가장 강한 군사가 될 수 있고 가장 밝은 곳이 될 수 있다. 론롤 정권의 부패에 반기를 들고 일어섰고 또 민중들이 가세했고 강한 조직력으로 부패한 정권을 몰아내었다. 그리고는 피의 숙청을 단행하고 화폐를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모든 공장을 폐쇄하고 자동차도 폐기하고 상업도 없애고 모든 지식인, 종교인, 전직 공무원들을 죽이고 오직 농업으로만 사회 평등을 실현하려 했던 광신적인 이상 주의자들이었다. 대규모로 농토를 조성하고 거대한 수로를 만들고 생산량을 늘리려 했으나 결국은 생산량은 줄고 백성들은 배고픔과 질병으로 죽어갔다. 왜 그랬을까? 부패가 없는 사회. 빈부 차이가 없는 사회.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분배받는 사회. 이러한 유토피아를 꿈꾸고 시작한 정권이었는데 결국은 백성들을 죽음과 피폐로 내몰고 말았다. 론롤 정권의 부패도 심하였다. 그렇게 많은 미국의 원조를 받고도 그 크메르 루즈에게 패했으니 극심한 이기주의자들. 우리는 이 두 정권. 론롤과 크메르 루즈에서 어떤 원리를 도출해 내어 미래의 남, 북한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도 크메르 루즈처럼 빈부차이가 없는 사회. 즉 같이 잘 사는 사회를 목표로 출발했다. 그러나 68 년이 지난 지금 인민들은 피폐해졌고 모두 다 못살고 배고픈 나라가 되었다. 공산주의에서 개인신격주의로 변모했다. 남한은 론롤 정권처럼 미국의 많은 원조를 받고,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극심한 빈부차이를 보이고 있다. 물질주의의 부패함도 커가고 인간미가 점점 없어지고 오직 돈이 말하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고 그에 따라 정부나 가진 자에 대한 반발이 점점 커진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남한이 기독교 국가로 남아 있다는 검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만들에 대해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조심할 점은 부자나 어떤 기득권 세력에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이상주의를 가장한 세력에게 동조하거나 부화 뇌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자나 기득권 세력은 언제든지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불만세력으로부터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처참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영원한 승자는 이 세상에 없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방법도 항상 어떤 한편만 들지 않는다. 이 쪽이 오만하면 저 쪽을 사용해서 그 오만함을 치시고 또 저 쪽이 방자하면 이 쪽을 이용해서 저 쪽을 겸손하게 하고 그렇게 하나님의 공의를 사용해 오셨다.

남과 북은 오랫동안 한나라였다. 한 핏줄이다. 한 가족이다. 나의 아버지는 1945 년 38 선이 갈라지면서 북한에 공산주의가 들어오자 북한 함흥에 사시다가 19세의 나이에 동생과 함께 임진강을 건너 자유 대한 남한으로 오셨다. 부모 형제들은 다 그대로 그곳에 살고, 아마 자식 둘이라도 자유를 맛보라고, 장남은 장남이니 못 가고 그 밑에 애들은 가기에 너무 어려서 그래서 둘만 보내신 것 같다. 그리고는 육이오가 터지고 군에 입대하셨고 이후에 대구에서 근무 하실 때 대구 사람과 결혼 하셨다. 그러니까 나는 남과 북의 소산이다. 나의 속에는 육신의 기질인 함경도의 끈질김 내지는 반항심과 대구의 보수정 내지는 폐쇄성인 면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1958 년에 났으니 북한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본이 없다. 그리고 1989 년이라고 생각된다. 노태우 대통령 때 몇 개학 학생간부들을 뽑아서 동구권과 서구권을 대비하여 보도록 특별여행을 시켜준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여행 인솔자로서 경북대학교 학생들을 인솔하여 서구와 헝가리. 서독에서 기차를 타고 동독을 거쳐 베를린에 가서 베를린 장벽도 보고 관광도 했다. 헝가리에서 어느 유스텔에 숙박 했는데 때마침 그 유스텔에 북한 학생들이 유숙하고있었다. 한국 학생들이 나보고 북한 학생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했다. 나는 책임자의 승낙을 받고 큰 방에 모이게 하고 북한 학생들은 침상 한 쪽으로 또 한국 학생들은 다른 한 쪽에 쭉 일렬로 앉게 했다. 그때부터 토론이 시작되었다. 무슨 내용을 토론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않는다. 기억이 나는 것은 역시 한국 학생들이 정보와 지식이 많으니 토론을 지혜롭게 인도해 나갔다는 것이다. 다 같은 우리 동포임을느꼈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동독을 거쳐 베를린으로 가는데 그 기차 같은 차량에 북한 사람 몇 명이 타고 있었다. 그 때만해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얼마 전이었다. 나는 호기심에서 그 나이들은 북한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걸었다. 나의 아버지도 북한 함흥사람 이라고하자 금방 이야기가 되었다. 그때 무엇을 이야기했는지는 생각나지않지만 말하는 말투나 생각하는 방식이 우리 아버지와 너무 비슷해서 놀랬던 것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핏줄은 이념보다 강하다는 것을

지금 북한은 김씨 사람 우상, 핵우상, 미사일 우상, 선군 우상에져있고 한국은 물질우상, 교육우상, 출세우상, 피부 우상에 빠져있다.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 때문에 70 년간 하나님으로부터 극심한 치리를 하였다. 이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처럼 사용하시는 이 한반도. 하나님께서 그 우상숭배를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 것이다. 반드시 치리하시고 회복시키시리라. 이제 분단된 지 68 년이 됐고 횟수로는 69 년째로 넘어가는데 이 하나님의 분단의 섭리가 70 년을 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물론 어려움은 겪겠지만 민족이 다시 교통되고 서로 회개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날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한반도를 향하신 성령님의 말할 수 없는 탄식하심은 무엇일까? 크메르 루즈를 한번 보낼까? 제발 교인들아, 죄좀 짓지 말고 살아라! 이 말씀이 크게 들려온다.

 



≪코 스 모 스≫



올해도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겠지

너무나 붉었던 장미들의 여름이 가면

색깔이나 흔들김이 너무

 

 연처러운 꽃이여

잘 쓸려진 마당, 시골길 옆으로

서늘한 빛으로 감정의 과다가 없이

그렇게 조금씩만,

얼굴 전체로 웃음 짓는,

사랑해주고 싶은 꽃이여

붉음이 없고 가시가 없고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내년에도 핍니다



≪육이오≫

육이오가 일어나고 상일만에
서울이 무너졌다
인민글 이 미아리로 넘어오고 

국군은 싸움도 못하고 패했다. 

대통령은 서울 사수를 외쳤지만
모두 한강 너머 도망갔다


지금은 모른다
평온한 때는 모른다
일단 싸움이 붙으면
실력자와 껍데기가 분간된다
준비한 자와 맹탕 논자가

그때는
마귀가 얼마나 잔혹한 가
하늘 이 얼마나 존귀한 가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