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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KBS (Kompongsom Bible S.)

Era of KBS 5th graduatio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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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pril 5th there was a 5th graduation at KBS, 23 students graduated as Diploma of Theology, and 4 as Certificate.
Brother Mao started mission in Srayrieng, Gideon to Kompot, 4 students to Mondulkiri, Joshep to PP, Pyreak to Kompongthom, Samol & Raksmey to Bohuy, Pailin. It is thanksgiving that they could go out to mission fields one by one after studying here three to four years. After graduation service, I visited Tatong of Shanxi, China, and shared the vision of training missionaries because time has come that Chinese church also bear the burden of foreign mission. In May visited China again, southern parts, DongKwan, Shenzhen, Kunming, and discussed this matter. We pray Chinese Gospel workers would reap the harvest in the fields of Lord.


In July two sisters of Tatong, Shanxi came to kbs for studying. We praised the Lord. I was sent to mission field Cambodia by Singaporean church (most congregation have Chinese background). It means I am working mission work with Chinese. Each people has his strong points and weak points. Chinese are slow but steady. Korean are fast but easily give up. I learned the precious lessons from Singaporean churches, also applied strong points of Korean church to the mission fields. Now Cambodian church is standing up. Cambodian church has great strong point; endurance and reconciliation, but also need improvement in the area of uncompromising faith, worship one God only.

 

It became 10 years to come to Cambodia. So I decided to read Khmer bible one time from Genesis to Revelation.
I read it with boy Soksan (10 years old) since 2006. He came to our mission house every morning with his mother. I enlarged Khmer Bible to A2 size, and read one page and Soksan one page. If my pronunciations were wrong, he corrected me. Every morning 6 AM we should read it together. It took more than one year to read whole bible. It was not easy. I wanted to skip the study of reading many times. He was patient, I also had to overcome the dizziness. It was so confused of the Khmer letters, so I felt the sense of dizziness when I tried to figure out the pronunciation. This small boy Soksan was my Khmer Bible reading teacher. After reading bible one time with him, I could read it two times more by myself.

 

In October Rev. Hong of Deacon Mission came and had combined Holy Communion and baptism with village churches. Also Moriah B-P church in Singapore had baptism at Moriah B-P church (Pastor Paul Sokha) in Battambang.


In November Seo Daegu church had inauguration service at Krek church in Kompongcham. Teacher Lydia resigned KBS and would start ministry in Kompot. Brother Pyreak is building sanctuary in Kompongthom with the help of Masan SungEun church. Four 4 graduate students in Mondulkiri started ministry with Rev Dennis Kim. Three graduate  students started ministry in Siemreap with Rev Lee KyoUk. Brother Borya and Esther started again the ministry in Ratanakiri.


On Dec. 7th, there was wedding of brother Sokun and sister Chhovy. Samol and Raksmay had new born son. Asian Highway and bridge to Laos had completed.

We pray this Gospel could reach even to Laos through the feet of Cambodian Gospel workers.

 

Brother Mao's wedding 
5th Graduation, 23 Diploma (05. Apr. 2007)
Phannith's family in Pailin
Sister Kim
KBS Students in Mondolkiri
Dr.Chan & Tracy
Mary and Grace
With visitors in mission house
Chhovy and Sokret in Korea
Borey Village
KBS
O5 children
Elder Mao's family
Choong Sung Church
Boston Hope Church
Paklong Church in KohKong
Stung Treng
Borey village
Choong Sung Church
Pakrong KohKong

 

† 2007년 6월 17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이곳 캄보디아를 위해 항상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올해 4월에는 제5회 졸업식이 캄퐁솜 신학교에서 있었습니다. 23명의 학생이 Diploma of Theology (3년 과정)으로 졸업하고 3명이 Certificate (1~ 2년) 과정으로 졸업했습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사역지로 나갔고 2명은 곧 사역지로 나갈 것입니다.

마오는 스바이리엄으로, 기드온은 캄폿으로, 4명은 몬돌길이로 요셉은 프놈펜으로, 삐레악은 캄퐁톰으로 올과 레악스마이는 빠일른 보후이 마을로 새로운 사역지를 찾아 나갔습니다. 그간 3~4년간 저희와 같이 생활하고 공부하였는데 한사람, 한사람 복음이 전하여 지지 아니한 곳으로 나가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4월 5일 졸업식 후 한국과 중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중국 북경과 산서성의 따통(大同)을 방문하여, 이제 중국 사역자들도 타국으로 선교사로 나가야할 것과 나가기 전에 필요한 훈련을 받고 나가야할 것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캄보디아는 이러한 중국선교사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됩니다. 영어로 신학을 할 수 있고 거리도 가깝고 기존학교 시설이나 교사들이 용이하게 올 수 있는 곳입니다.

 

5월말에도 중국 남부, 동관 심천 곤명을 방문하여 현지 선교사님을 만나고 중국선교사훈련에 관해 의논했습니다. 이제 많은 중국선교사들이 충분한 훈련을 받은 후에 남은 추수밭으로 가서 남겨진 큰 일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올해는 이곳 캄보디아에서 사역한지 10년이 됩니다. 부족한 사람이 지금까지 가르치는 일과 교회 세우는 일을 감당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많은 교회와 성도님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인하여 사역이 넓어질 수 있었습니다. 많은 좋은 교회와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성도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이 사역으로 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간섭하심과 신실하심을 더욱 알게 된것도 이 사역으로 인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과 부패함과 못난점들을 더욱 알게 된 것도 이 사역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캄보디아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나 자신의 부흥과 한국선교사(재캄보디아)들의 부흥, 또한 한국교회의 부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많은 선교사님들에 의행 많은 교회가 세워졌고 또, 더욱 많이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이교회들이 생명을 가지고 성장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앞으로 10년간은 복음전파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는 나라의 복음 일꾼들을 캄보디아로 불러 필요한 훈련(신학, 영어, 선교 훈련)을 시킨후에 남아있는 추수밭으로 파송하는 일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그간 10년간 저 자신도 이러한 일을 위하여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더욱 더 동역과 간구와 성령안에서 이 큰일을 감량하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동참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평안이 늘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2007. 6. 17
한성호, 김은실드림

 

 

† 2007년 10월 11일

우리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이곳 캄보디아 사역을 위해 항상 기도해주시고 도와주심을 항상 감사합니다.

 

올해 9월로서 이곳 사역이 10년을 맞이 했습니다.

그간의 사역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이곳에서 계속해서 이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캄보디아교회를 건실히 세워가는데 도움이 될까하는 문제를 가지고 많은 생각을 하는 시기였습니다. 선교사로 인하여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곳 캄보디아가 선교사를 필요로 하고 외국교회의 도움을 필요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전 이곳에 왔을때, 추수할 것은 너무 많고 일꾼은 너무적고 그리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많이 기도하고 또 찬송도 그 찬송을 많이 불렀습니다. 나 개인의 필요에 의한 기도였지만, 하나님은 이곳에 많은 추수 일꾼을 보내주셨습니다. 캄보디아 전역을 보고 그의 교회를 세워가시는 그분의 운행하심은 나의 작은 사고의 범주를 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올해부터는 또 다른 기도제목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복음의 문이 제한된 국가의 일꾼들을 인근의 복음의 문이 개방된 곳으로 불러내어 충분한 훈련을 시킨 후에 본국이나 다른나라로 파송하는 일입니다. 중국 내에는 많은 신앙으로 잘 훈련된 사람들이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어디에서 잘 훈련 받을 수 있는지를 모릅니다. 중국의 많은 복음의 용사들은 주님께서 마지막 때를 위하여 남겨두신 화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선교사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또한 한국교회의 선교사들이 담당하여야할 몫인것 같습니다.

올해 초 '하늘에 속한 사람'에 나오는 수형제 (Peter Xu)를 만나 이러한 이야기를 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의 친적으로부터 초청받게 되어 금년 4월 경 산서성 따통(大同)을 방문하고 그곳 사람들과도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 6월에는 중국 남부지방을 다니며 이러한 Vision을 한국 선교사님과 나누었습니다. 마침내 9월에 산서성 따통에서 두 자매가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캄퐁솜 성경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신청자가 여러명 있었지만 여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하기때문에 두명 밖에 올 수 없었다고합니다. 두명 중 한명은 여비를 집에서 부담해 주었고 다른 한병은 여비를 구하지 못하였으나 본인은 꼭 가야한다고 강한 의지를 보여 주위에서 얼마씩 모아서 오게 되었습니다. 이 두 자매는 저희 신학생들과 같이 영어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작은 시작이지만, 이 Vision이 주님의 뜻과 부합하고 우리 사역의 신실함이 인정되면 여러 모양으로 이 사역을 부흥시키시리라고 믿습니다. 수형제가 이런말을 하는것이 기억납니다. "어떤 사람이 이야기 하기를 중국 공산주의는 소련의 모델을 채택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중국교회는 한국교회의 선교 모델을 채택할 때 성공할 수 있다."

 

저자신도 한국사람으로써 외국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한국교회를 객관적으로 판단해볼 때 한국교회의 선교에 대한 열정과 힘은 거대하면서도 독특합니다. 10년간 사역하면서 100~150의 선교팀을 받았다고 생각됩니다. 그중에 70% 이상이 한국교회에서 온 선교팀이 었습니다. 그리고 이제껏 지방 교회가 20곳 건축되었는데 90% 이상이 한국교회의(또는 성도님의)헌금으로 지어졌습니다. 교회 건축에 대한 한국교회의 관심은 대단합니다. 황무지와 같은 캄보디아에 마을에 예배당 하나가 건축되는 것만으로도 큰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중국교회에서 파송을 받고, 또한 여러 중국교회와 같이 일을 해 왔습니다. 싱가폴이나 홍콩의 중국교회는 큰힘을 가지고 있고 선교의 일에도 많은 열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 교회와 같이 일하면서 이들의 꾸준하고 지혜로운 사역에 참 많이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속도는 굉장히 느린것 같은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분명한 사역에는 여러가지 이유를 달지 않고 추진해 나가고 장시간동안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사역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교회의 열정과 희생, 싱가폴이나 홍콩교회의 합리성과 지혜 이러한 것들이 중국본토 교회에 전수가 되고, 또 그들의 강한 신앙이 이러한 방향으로 불이 붙을때, 우리의 동역이 기쁨과 큰열매로 나타나리라 확신합니다.

 

올해, 2007년은 한국교회에 특별한 해라고 생각됩니다. 평양대부흥의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또한 아프카니스탄에서 한국선교팀이 고난을 당한 해입니다. 이 한국교회 부흥100년이 되는 해에 이러한 고난이, 어쩌면 영광이 찾아온 것이 큰 의미가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년부터 캄보디아어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캄보디아어 공부도 안했고, 말도 할 줄 모르고해서 이제 공부를 좀 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저희 집에 매일오는 속산(10세) 초등 학생과 매일 캄보디아 성경을 몇장씩 읽기 시착했습니다. 그러다가 금년 7월 말경, 배목사님이 주님을 위해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열왕기상 14장을 읽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아이가 아파서 자기 처를 보내서 선지자에게 아이가 살것인지 죽을 것인지 물으러보내고, 선지자는 그 아이가 죽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당시 뉴스에서는 CNN이나 여러방송에서 한국선교팀인질사건을 매일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성경구절을 읽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한국 선교팀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인질 몇명이 풀려났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그 다음날 그것은 오보였고, 배목사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혹시나 한국교회와 한국선교가 여로보암의 죄를 지은것이 아닌가? 참다운 예배를 방해하고, 아무나 목회자가 되고 규례와 법령을 임의대로 바꾸고, 성령이 주도하는 선교가 아니고 교회와 교단이 주도하는 선교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선교의 내용도 성령님이 참으로 하고싶어 하는 것인지? 앞으로 중국교회는 한국교회의 예배와 선교의 모델을 따라야 할텐데 그에 앞서 잘못가고 있는 방향에 일침을 놓는 아프카니스탄 사건이 아니었다 생각해봅니다. 1907년 당시 한국교회의 부흥의 기사들을 짧막하게 나마 읽어보면 예배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교회의 모습이, 성도의 모습이, 전도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명확히 보여주고있는데 오늘날의 저희의 모습과 참 많이 다릅니다.

 

저 자신만 보더라도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그 열심과 헌신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안일, 불신, 타협의 모습으로 바꿔져있음을 봅니다. 얼마 전 오신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요즘 선교사들이 개인 전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 는 말씀이 무척 나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초림하신 예수님 당시, 그 때가 가시적으로 예측된 것 같이, 오늘날, 재림하실 예수님의 때가 가시적으로 예측되어 지므로, 우리가 열심으로 일은 하지만 믿음과 초심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그간 이곳을 향하여 많은 기도와 헌신과 사랑과 헌국과 시간을 보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다시금 이사역과 저 자신에게 주님의 기름부으심이 있기를 기도해 주십시요.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07. 10. 11.
한성호, 김은실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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