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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사모 한국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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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한국을 향하여.( 2023.4.30 )
여권.비자.항공권 모두 갖추어졌다. 이제 그 드라마에서만 보던 꼬레( Coree)로 간다.
4개월된 간난애기 보아스를 떼어놓고 온 뜨리나 사모, 귀가 아파서 못간다고 해서 한국에 가서 진찰해보자고 설득해 따라논 끔행, 오기 몇일전 심하게 아파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있던 쏙쩬다, 그 정글 오지에서 신혼시절부터 10여년 사선을 몇번 넘으며 사역하다 온 쏘키어, 오뜨레   오뜨레마을 비포장 도로변 임시텐트에서 유년기 생활을하다 KCS를 거쳐 로얄국립대까지 졸업하고 교도소 사역의 중요 멤버가 된 쓰라이 빠우, 한명 한명 주님앞에 간증으로 인해 이 여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인천공항도착
밤새 날아와서 한국의 공기를 마신다. 쌀쌀하다. 기내에서 준 밥을 잘 못먹었다고 한다. 짐이 엄청나다. 주일이라 전철을 타고 소명교회까지 가야한다. 한사람에 평균 3개씩 무거운 짐을 끌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락 내리락, 낮선 환경, 전투가 시작되었다. 기내에서 잠도 잘못자고, 배도 고프고, 힘도 없는데 갑자기 빨리 빨리 mode로 변환시키니 모두 이게 뭔가 하는 표정이다. DMC 역에 가니 소명교회에서 차 두대를 대기시키고 우리를 인도했다. 이제 짐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예배.
소명교회 11시 예배에 조금 늦게 도착해서 찬양을 같이하고 소개를 하고 예배드리고 손수 준비해 주신 식사를 맛있게하고 가방을 하나씩 선물받고 반가운 성도들과 교제하면서 이들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배고픔과 피곤함. 어색함.추위가 일시에 사라졌다. 한국땅, 첫 방문지에서 벌써 교회.성도의 교제의 충만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지
소명교회에서 잠간 눈을 붙인후 전해일목사님.사모님 안내로 양화진에 갔다. 많은 무덤과 돌묘비, 거기에 새겨진 이름들, 사역들, 하나씩 둘러보며 이들이 밑거름이 되어 오늘날의 한국의 축복이 있음을 설명하고, 지금 캄.사모들이 하고있는 수고와 눈물이 결국 캄보디아 교회와 나라를 일으켜세울 것임을 설명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이들, 남편이 죽고 자녀를 데리고 선교를 이어간 여인들, 젊은 나이에 이국땅에 묻혀야한 사람들, 풍토병으로 자녀들을 잃은 사람들, 이 무언의 무덤과 돌들은 큰 메시지를 캄.사모들에게 전하고있었다. "인내하고 충성하라, 하늘의 상급이 클것임이라" 강바람은 쌀쌀했지만 이네들의 마음과 눈시울은 뜨거웠다.

첫날 숙소
박원장님 부부가 저녁과 숙소를 마련해주셨다. 뜨끈한 국물과 같이 식사하고 좋은 호텔로 갔다. 내부가 번쩍 번쩍해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조식도 부페라서 다양하게 먹었다. 첫날부터 호강을 해서 좀 염려가 되었으나 주님이 이들을 이렇게 높히시려 하시는것이라 생각했다. 식사후에 소파에 앉아 말씀을 같이 상고하고 또 짐과의 전투에 들어갔다.

일산호수공원.경복궁
일정이 빡빡해서 일산꽃박람회나 경복궁 중에 하나만 택일하라 하니 둘다 보기를 원해 알산호수공원에서 구보로 입장권을 끊으러 갔으나 도중의 많은 꽃들과 사진을 찍느라  일행을 놓쳐 재촉하고 재촉해도 꽃들의 유혹앞에 소용이없었다. 표를 사는 줄이 길어 밖에 있는 꽃들과 각종 음식.선물을 보고 신기한 꽃들과 수많은 사진을 찍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경복궁
날씨도 화창하고 사람들도 제법 많고 한복을 하나씩 골라입고 고운 자태로 궁궐로 들어가 부랴부랴 조선역사의 한중심에 서서 이국나라에서 온 공주처럼 이 나라를 마음껏 즐긴다.
한복의 은은함. 날렵하면서도 풍성함을 고옥과 같이 모두 사진에 남기려 분주히 근정전에서 경회루로 또 이뜰에서 저 뜰로 발길을 옮긴다.

흰돌교회
그리고 경복궁인근에서 전철을 타고 광명으로가서 또 버스를 타고 흰돌교회로 갔다. 우리 짐은 전목사님이 트럭으로 숙소인 오산 광은 기도원으로 옮겨놓으셨다. 
이제 호수공원과 경복궁에서 훈련이되어 전철 갈아탈때나 버스 타고 내릴때 동작이 빨라졌다. 이상범목사님.사모님, 교인들과 교제하고 저녁엔 용인으로갔다.

새에덴교회
큰 예배당을 둘러보고 여러번 단기선교 오셨던 홍윤기.홍복기 목사님과 식사 교제를하며 코로나전 10년간 KBS 산하 여러 지방교회에서 단기 사역했던 일들을 추억하고 교도소에 약품공급하는 것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산 광은 기도원에 가서 여장을 풀었다. 아침에 일산호수공원에서 달리기 하며 꽃구경하고 경복궁에서 우루루 뛰어다니며 사진찍고, 전철.버스타고 이동하고 광명. 용인. 오산까지, 하루에 5개 도시를 휩쓸며 다녔다.

오산 광은기도원
기도원에서 여자들 한방, 이상범목사님과 나 한방, 이렇게 자고 일어나 기도원을 둘러보니 온통 꽃이 만발해있었다. 또 꽃사이로 들어가 사진을 무진장 찍고 성경의 실제 크기로 만들어놓은 성막 공부를 2시간 하고 어떻게 제사 지내는지, 성소, 지성소, 울타리, 모두 네겹의 텐트, 생생한 수업이었다. 바위에 새겨진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를 암송하고 세종시에서 차를 가져온 임지훈목사와 차 두대로 세종시으로 이동했다.

세종시
한식부페집에서 전웅환.(임길빈)장로님 부부와 홍정철목사님.김현강도사님과 식사하고 팀들이 김현강도사님 과수원 견학하는 사이 끔행과 나는 이비인후과에 가서 끔행 귀를 검사했다. 오랫동안 통증이 있어 의사에게 보이니 조직검사를 해야한다해서 시간이 촉박해 그냥왔다. 전장로님댁에서 의류.의약품을 선물받고 제천으로 향했다. 짐은 점점 늘어났고 조그마한 보따리들이 많아졌다. 이상범목사님은 이틀째 계속 운전해주셨다.

제천
저녁때쯤 차량 두대로 하늘누림교회에 도착해 본당에서 이준호목사님때부터 시작된 캄보디아 선교가 이태규목사님(우차선사모)으로 이어져오며 23년간 우리 KBS와 동역한 것을 이야기하고 각 부서별 방들을보고 20년 이상을 알아온 두 장로님, 두 권사님과 반갑게 재회하고 심종호 장로님댁에서 삼겹살 바베큐 식사를 하고 한국으로 시집간 꽃솔자매도 와서 재미있게 그간 일을 이야기하고 단독주택에 투숙해서 많은 짐들을 정리해서 선물로 받은것을 일단 10개의 박스에 넣어 마지막 코스인 서울 엘림교회로 보내기로했다. 다음날 맥도널드에서 아침 교제를하고 팀은 금성영광교회 (김광호목사님) 으로 가서 교제.기도하고 나는 우체국에 가서 10개의 박스를 택배로 보냈다. 한국 시골교회를 방문하고 동병상련의 마음이었는지 속쩬다 사모는 눈물로 중보했다. 이곳 영광교회가 꽃솔자매가 2006년 한국으로 시집와서 남편 지병준집사와 예배하고 요한.요셉을 낳아 가정을 꾸린 곳이다. 제천터미날에서 팀과 합류하여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도착
부산터미날에 도착하니 이지영목사님 사모님께서 차량 두대를 가지고 오셔서 어렵게 LCT까지 갔다. 전대우장로님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많은 짐을 Mall 부근에 내려놓고 조금있으니 홍미자매가 서울에서부터 왔다. 소명교회에서 이 팀을 볼수없어서 부산까지 이 팀을 보기위해 내려와 3일간 합류했다. LCT는 101층 건물인데 우리는 83층, 해운대와 바다.시내가 비행기를 탄듯 내려다 보이는 넓은 방에 첵크인 했다. 전장로님 배려로 삼일간 이곳에서 지낸다. 대구탕 저녁을먹고 수영로교회 저녁예배를 은주자매와 같이갔다. 전장로님은 캄보디아에 3개의 교회를 봉헌하셨다 (빠일른, 꼬꽁, 쬼까끄라옷). 끔행사모가 10년간 귀부근이 아파 고생했는데 즉시 처치하셔서 괜찮아졌다. 사모들은 LCT 부엌시설, 전망, 소파, 모든것을 누리며 잠시나마 부유한자가 되었다. 해운대 비치가 시하눜 비치보다 못하다고했다. 예수님이 우리를위해 하늘에 mansion 을 만들어 놓겠다는 말씀을 더 잘 이해할수있는 계기가 되었다.

부산투어
부산에서도 일정이 빡빡했다. 일단 송도로 가서 다리를 건너 조그만 섬으로 가고 케이블카를 타고 자갈치시장을 순식간에 둘러보고 멍게를 사서 열방교회 (이숙애목사님) 로 가서 잘차려놓으신 한식을 먹고 거기서 같이 기도하고 또 서문교회시절 단기선교를 나왔던 그 당시 청년이었던 강정훈목사님을 만나 이제는 수영로교회 부목사님으로 사역하시고, 국제시장에서 큰가방을 하나씩 사서 끌고다니니 그 소리가 대단했다. 오후에 은주자매가 요트도 태워주고, 오겹살도 먹고 하루종일 강행군이었는데 연세가 80이 가까우신 이지영목사님이 25인승 차량을 하루 임대하셔서 좋은 곳을 데려가시고, 손수 하루종일 우리를 인도해주셨다. 또 밤에는 화장품세트를 가져오셔서 하나씩 선물해주셨다. 또 과분한 사랑을 받고 짐도 늘었지만 이제는 큰가방속에 다넣을수 있었다. 지친가운데도 밤에 은주자매가 미용사분을 모셔오셔서 사모들의 머리를 modern 하게 만들어주었다. 일부는 배탈이나 계속 쾌통환을 먹고 소화제.까스명수.정로환을 먹으며 다양한 한국음식을 돌파해나갔다.
시간과의 싸움. 짐과의 싸움. 음식과의 싸움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천상의 생활같은 LCT, 하늘을 나르는 케이블카, 맛있는 다양한 음식, 망망한 바다를 가르며 나가 육지를 바라보는 요트, 모든 물건, 생물이 있는 큰 시장들, 정말 큰 경험을 하루동안 하게해주시니 감사할 뿐이다. 천상의 사랑. 부요함, 즐거움이 무엇인지 이것들을통해 가르치시려 함이 아닐까.

경주
부산에서 차량 3대로 (박대근목사. 은주.은주언니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안개가 낀 도로를 달려 경주 유적지에 도착해서 도처에 언덕처럼 있는 큰 왕릉들을 보고, 천마총 내부로 들어가 여러 금으로된 왕관 요대등을 보고 중식당에 가서 짜장면.탕수육을 먹었는데 쏙키어 사모가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되어 손가락을 따니 금방 괜찮아졌다. 이날은 5월 5일 어란이날이어서 교통이 극히 혼잡할것으로 예상되어 경주 구경은 불가능 할것으로 예상했는데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 사람들이 집에서 안나오는 바람에 편하게 잘 구경했다. 일부는 피곤해서 먼저 금척교회 (박대근목사)로 가서 누워서 쉬고 대부분은 불국사.청보리밭을 보러갔다. 금척교회에서 쉬고 있으니 소명교회 팀이 왔다. 전목사님.사모님. 근영.근영 부친. 홍민. 또 남자친구들.. 거기서 또 캄보디아 팀. 소명팀이 같이 찬양하고 기도하고 우리는 KTX를 타고 동대구로 왔다. 거기서 시간이 좀 남아 옆에있는 신세계 백화점 구경하고 나는 짐을 지키고 있는데 미얀마에서 선교하시는  홍순호목사님과 만나게되었다. 밖에는 비가 먾이 내리고 있었고 명지교회 차량 두대가와서 또 그 무거운 가방들을 다 실었다. 싣고 내리고, 그 짐을위한 차량수배,  짐이 어디를 가나 큰 숙제였다.

대구 명지교회
우중에 짐을 내려 교회 방에다 놓고 간식을 먹으며 명지교인들과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우리를 기다리느라 늦은 시간까지 교회에 계셨다. 서로 자기 소개를하고 원로목사님이신 황규완목사님의 30년 사역의 간증을 들었다. 군출신으로 조금만 더 복무하면 연금이 나오는데도 예편하시고 믿음으로 사역을 시작하시고 꿈에 본대로 교회 부지를 구입하고 오랬동안 기도하니 옆에 있던 세개의 절들이 다 없어지고 30년간 하루도 안빠지고 종탑방에서 기도하신 이야기, 죽을 병에서 고침받은 이야기를 들었다. 임장로님이 몸이 좀 불편하시다 해서 명월초를 소개해드렸다. 요사이 KBS에 명월초로 인해 많은 사람의 건강이 호전돼고 있어 장로님도 오셔서 자립형 장기사역을 하시면 좋겠다고했다. 명지교회는 트모방의 쬼까째익 교회를  처음부터 후원해오고있고 코로나전에는 매년 단기선교를 나와 그 교회에서 숙식하며 선교활동을 해왔다. 아침일찍 바로옆에 있는 대구고등학교를 우산을쓰고 교정을 둘러보았다. 교련복.교복 검사를 하던 정문, 그당시 목조건물 자리, 운동장 테니스장, 강당, 나의 친한 친구 평행봉.철봉자리,배구장 모두 바뀌었지만 그때 정서와 꿈은 지금도 새롭다. 수업을 마치고 항상가던 학교앞 육체미 도장, 높은 담을 담치기하던 곳, 바로 그곳에 명지교회가 들어섰다. 담이 높아 뛰어내리면 다리를 다칠수있는 높이였는데..젊음의 오기..인생은 모험이 필요하다. 불신에서 믿음으로의 모험은 가장 큰 용기이고 성공적인 시도인것을 이제 알게된다. 지루한 헉업에서 벗어나 어디서 좀 재미를 보기위해서도 담치기라는 모험이 필요한데, 사망에서 영생이라는 그 큰 복을 얻기위해서는 생명을 거는 모험이 필요하다.   서일교회 김동욱목사님이 장로님들과 명지교회로 오셔서 같이 교제하며, 서일교회가 땅문제로 고소를 당해 돈을 물어주게 생겼는데 서류를 떼어보니 하자가있어 오히려 큰 금액을 보상받게되어 그것으로 새성전 건축을 할수있게되어 내년에 완공한다고하셨다. 대역전의 간섭하심이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없이는 어느 사역지나 넘어지고 좌절할수 밖에없다. 이 교제를 통하여 도전받고 격려받고 힘을 얻고, 기쁨으로 하나되고, 성령의 교통하심을 체험한다 

서대구교회
차 두대로 우중에 서대구교회로 가니 김진홍목사님과 많은 교인들이 예배당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젊은 성도님들이 많았다. 같이 찬송하고 팀 소개를하고 서대구교회가 15년 가까이 후원하는 끄렉교회의 스라이니엉 사모의 간증이  있었는데 조그만 임대 공간에서부터 시작해서 교회부지를 그리고 건축까지 하게된 내역을 이야기하고 스라이뻐우 자매도 오뜨레 마을 도로가 텐트생활에서 프놈펜 왕립대 경제과를 졸업하고 십수년간 교도소 사역을 해온 간증을 하며 하나님의 신실함을 나누었다. 서대구교회 역사를 오래된 사진을 통해 보고  예배.선교등의 교인사명문을 들었다. 같이 점심식사를 식당에 가서하고 차량 두대로 경북대학으로 갔다.

경북대학교
안에 들어와 옛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게 변해서 한참을 헤메다가 시계탑으로 가니 박종환 장로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분은 이곳에서 30여년간 근무하고 연구하다가 퇴임했다. 일단 본관을 보고 김은실 선교사가 공부한 사범대학으로 가서 "참 스승의 길" 이라고 새겨진 돌에서 사진을 찍으며 스승과 제자,  선교사와 선교지의 제자의 관계가 어떠해야 할지를 생각해봤다.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리고 명지교회에서 선물 받은 여러 색갈의 우산들이 교정을 밝은 모양으로 바꾸었다. 다시 경상대 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그 건물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77년 입학했으니 46년이 됐다. 가끔 테니스 라켓을 가져와 벽치기 하던 그 건물벽, 김선교사도 가끔 이곳에 와서 수업을했다. 쏙쩬다 사모가 자꾸 우리가 어디서 만났는지 이야기 해달라고한다. 다방에 남.여학생 여러명가서 사다리타기 해서 만났다는 이야기를 할려면 시간이 필요할것 같아 나중에 해주겠다고하니 조금있다. 또 묻고 또묻는다. 나중에, 나중에 하며 교정을 걸어갔다. 바가오고 쌀쌀해서 찻집에 들어가 이야기 하다보니 고속버스 시간이 촉박해 터미날로 가니 타는곳을 잘 알수도없고 차를 먼곳에 대다보니 그 많은 짐들과 큰 박스를 옮기는 것이 문제였다. 일단 내가 짐을 몇개 끌고 광장을 누비며 버스터미널을 물어 건물로 들어가니 바로 첫번째 문에 광주 라고 쓰여있어 팀들을 하나씩 불러모았다. 거의 차를 놓쳤다고 생각하니 이 인원이 어디서 자고 다음 일정이 망가지는데.. 하는 아찔한 생각에 한동안 식은 땀이 났다. 또한번 짐과의 전쟁을 치뤘다. 대구에 있는동안에는 계속 비가왔다.

광주 오일교회.
저녁 늦게 광주터미날에 도착해 이형환목사님 만나서 많은 짐을 숙소에 옮겨놓으시는동안 저녁 식사 주문하라고 했더니 라면이 대세였다.
다음날 주일 오일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나는 갈렙이 전심으로 하나님 섬기는 것을 설교했다. 이미 가나안을 준다고 약속했는데 정탐하고 와서는 인본주의 사고가 작동해서 하나님께 반역하는 모습에서 오늘날의 교회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끝까지 충성, 끝까지 전심으로, whole heartedly,.. 예배후 즐거운 교제가 이어졌다. 2011년경 대한이가 중3을 마치고 지환이와 같이 와서 1년간 KBS에서 공부하면서 이번에 온 사모들과도 친분이 있어서 바로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최병진장로님.김철희권사님의 4 자녀인, 참, 조은, 우리, 대한. 이 온 가족을 오일교회에서 만나고 조은이도 대학생때와서 KBS에서 얼마간 생활하고 이제는 공무원을 하며 결혼도했다. 김재규집사님.김영숙권사님도 여러번 캄보디아에 오셨고 몬돌기리에서도 좀 생활하셨다. 복용교회 멤버들은 벌써 안지가 15년이나 되고 한국 방문때도 종종 만나고, 친밀한 관계가되었다. 식사후 멋진 호수 풍경이 있는 까페에서 지난 선교이야기.사업.가정이야기 하는동안 사모들은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찍느라 분주하다. 저녁에는 아구찜을 사주셔서 다 못먹고 포장을 해서 증도 엘도라도에 가져갔다.

숙소는 너무 좋은곳에 있었다. 서해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조그마한 바위들과 파도, 해송, 해변, 그 언덕에 엘도라도가 있었다. 그 아구찜. 샌드위치를 먹고 밖으로 나가 하나님의 창조물에 감탄하며 즉석에서 천양하며  찬양 비데오를 찍었다. 날씨.경치.바람. 그리고 안식을 취하려 이국에서  온 성도들, 또 이를 준비해주신 정성, 사랑, 모든것이 아름다웠다. 먼저 갯뻘위로 놓인  짱뚱어 다리를 걸었다. 뻘속에 있어야할 짱뚱어들과 게들이 모두 기어 나와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인다. 이국에서 온 공주들의 방문  이벤트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뻘위를 꿈틀대며 그 툭 튀어나온 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거기서 조금가니 문준경전도사의 무덤이 있었다. 이 모래사장에서 1950년 총과 죽창으로 교회의 씨암탉이라며 공산주의자들이 그녀를 죽였다. 도망갈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순교를 택했다. 결혼해서 하룻밤도 신랑과 동침하지 못하고 버림받은 그녀는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가다 신학을하고 신안군의 많은 섬들을 성경책을 끼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일년에 아홉 켤레가 닳도록 걷고, 걷고, 배타고 다름 섬으로 전도하고 또 전도해서 많은 교회가 생겨나고 많은 훌륭한 교회지도자가 배출되었다. 기념관에 가서 여러 기록들을 읽고, 다니신 섬들, 세우신 교회들, 배출하신 목회자.전도인들..많은 열매를 보고 한 평범한 여인의 믿음이 밀알처럼 주님안에서 썩어져 많은 열매를 맺었듯이 캄보디아에서도 이와같은 일들이 일어날수 있음을 다짐했다.

복용교회
이제 복용교회에 도착해서 마중나오신 목사님.성도님들과 인사하고, 이형환목사님은 광주로 돌아가시고 우리는 농촌체험센터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압해도 안좌도 암태도 팔금도, 박지도, 반월도등 많은 섬과 압해대교, 천사대교등 여러 다리를 건너며 신안군의 섬들을 보고 보라색의 퍼플섬을 퍼플다리를 건너 해풍을 맞으며 직접 한시간 동안 걸어보기도했다. 바다와 구릉, 또 여러 작물을 심어놓은 밭들, 좋은 풍경이었다. 참 풍요로운 곳이다. 해산물도 많고 농장물도 많고, 과실수도 많고, 가축도 있고, 날씨도 좋고, 살기 좋은곳이다. 또 저녁에는 회집으로 갔는데 캄.사모들은 조개나 생선만 먹고 회를 먹을줄 몰라 회를 다 우리 상으로 가져와서 회를 엄청 먹었다. 저녁에 센터로 돌아오니 김재규집사님이 수박을, 대한이가 딸기와 참외등 과일을 가져와 또 한동안 이야기했다.
나권사님이 아침에 식사도 준비해주시고 기차에서 먹을 떡도 챙겨주셨다. 아침후 전장로님 농장을 방문해 배나무.배 저장창고, 배즙만드는 기계등을 보고 큰 배를 하나씩 선물받고 배즙도 받았다.  목포역에서 또 짐정리를 하느라 가방을 펼쳐 작은것들을 큰가방에 넣었다. 급히 전세식 장로님과 인사하고 김재규집사님은 차 파킹하러 가셔서 인사도 못했다. KTX를 탔다. 이제 서울로 간다.

동대문시장.남산.엘림교회
서울역에 도착하니 전해일목사님이 차를 대기시켜 놓으셨고 최재훈목사님도 차를 가지고오셔서 동대문으로 가서 필요한 선물을 샀다. 나도 열쇠고리, 랜턴을 샀다. 물건값이 저렴하니 사모들도 제법 쇼핑을한다. 이제껏 여러 교회를 다니며 용돈도 조금씩 받았다. 바로 남산 도서관에 파킹하고 버스를타고 또 걸어서 정상에 올라가 전망을 보고 연인들이 열쇠 잠궈놓고 희망사항을 적어놓은 거리에서 사진찍고, 남산타워에 올라갔다가 엘림교회 (최재훈목사님)로 향했다. 주사랑교회 정성일목사님이 마련하신 저녁을 먹고 엘림교회에 가서 각자 그간의 소감을 발표하고 기도제목을 나누고 숙소로가서 짐을 다시 팩킹해서 30 키로로 맞추고 다음날 이상범목사님이 아침 일찍 차를 가져오셔서 차 두대로 공항에 갔다.
정말 꿈같은 10일동안의 여정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랑을 여러 교회로 부터 받고.. 참 감사했고, 이 캄보디아 사역자들의 희생, 아픔, 곤경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위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손길을 보게되어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