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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Prints/Mission Trip

4 ~ 5. Aug.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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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4일

일행 6명이 지선교사님 차로 먼저 비엘톰교회로가서 사번사역자를 만났습니다. 사택이 침수되어 자다가도 비가 많이오면 바닥의 물을 퍼내야하고 어려운 사정을 듣고 일전에 싱가폴 Life BP 교회 의사분이 트모방기숙사를 위해 헌금한것을 양해를 구하고 비엘톰 사택헌금으로 돌려놓고 부족분을 기도해왔습니다. 하지만 응답이 없어 9000불로 사이즈를 줄여 5×8m 로 벽면을 양철로하고 타일깔고 기와로 지붕하고 방하나 부엌, 화장실 이렇게 짓기로하고 사번 남편이 건축일을 하므로 자재는 우리가 사주고 그 남편이 인부를 고용해 짓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사택을 건축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인근의 졍꼬교회로 가서 소빈 사역자 만나 얼마 후에 오게 될 푸이밍선교사의 사택을 보았는데 푸이밍선교사는 싱가폴 Life BP 교회 출신으로 케냐에서 오래 사역했고 라따나기리 레마을 소수민족 마을에서 현지인처럼 집을 지어 거기서 몇년 사역하다 허리가 안좋아 이번에 시골마을인 졍꼬교회로와서 소빈사역자를 돕게됩니다. 그간 많은 비로 졍꼬교회 인근이 온통 진흙과 물투성이였습니다. 이곳 해안지방은 비가 많이오고 따께오나 푸삿지방은 비가 안와 풀이없어 가축들이 고생하고 벼농사도 못하고... 같은 나라 안에서도 극한 상황입니다.

 

원래 계획은 이 두 교회를 둘러보고 캄폿으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캄폿의 도로가 2주간 연속 비가 쏟아부어 아스팔트가 벗겨지고 진흙 맨땅이 드러나 노면이 미끄러워 사고가 나고있다고 끔산에게서 연락이와 어디로 가야하나 갑자기 어리둥절 했습니다. 금번여행을 계획할 때도 몇군데 교회가 코로나로 통제되었다해서 못가고 또 여러 도로가 통과하기 힘들다하여 캄폿으로 정했는데.. 그래서 차안에서 6명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놓고 기도하는 도중에 갑자기 오일팜의 페악트라사역자가 생각났습니다.

 

페악트라사역자 집에 가니 부인만 있고해서 좀 이야기하다, 지금 강건너편에서 물고기양식을 한다하여 한번 보려고 페악트라 사역자를 기다렸습니다. 사역자가 도착한 후 페악트라 사역자의 배, 또 이웃 주민의 배로 총 2대로 나눠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는데 배가 작아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무사히 강건편에 내려서 양식장을 보고 물고기들니 잘 자라고 있었고 5년전 강가에 정글같은 땅 1헥타를 아주 싸게 구매하였다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된다고 비싸게 팔수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고 믿고 그냥 열심히 땀흘리며 살아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곳을 나와 우리는 더이상 갈곳이 없으니 오늘 게스트하우스에 같이가서 교제의 시간을 갖자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하여 그집 식구 5명과 우리 일행이 같이  저녁식사하고 그의 간증을 들었는데 그의 집이 가난하여 7학년을 마치고 학업을 중단하고 인근에 있는 비엘톰교회를 다니며 배웠는데 그때 여호수아전도사가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면 캄퐁솜에있는 신학교에 보내준다하여 본인은 불교학교처럼 그런 곳인가 생각해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그곳에 가면 대학처럼 영어도 배우고 많은 과목을 배울 수 있다는 말에 열심히 출석해서 2002년경 KBS로와서 공부하고 재학 중에 오뜨레마을에서 가르치기도하고 하면서 자신이 7학년밖에 안했는데 교사도하고 뿌듯함을 느끼고 2006 졸업하여 처음에는 아이작전도사와 보레이교회를 섬기다 2007년 오일팜교회로 옮겨와 사역하다 2020년까지 오일팜교회를 섬겼습니다.

 

지금은 교회에 어떤 일이 발생하여 집에서 예배드리고있는데 10여년전 프놈펜에서 1년과정의 간호사일을 한국선교사님한테 배워 사역하면서 아픈사람 링겔도 놔주고 약처방도 하는데 그가 기도하고 치료하면 많은 아픈 사람들이 회복되고 여러 의사에게 가도 차도가 없던 사람들도 이 사역자의 단순한 치료에 회복되고해서 많은 환자들이 찿아와서 당신은 분명히 고칠수있으니 고쳐달라고 한다고 하면서 한달에 100명 정도의 환자를 봐왔다고 합니다. 그 일대에서는 그의 이름은 몰라도 예수병원 (페악트라에게 이런 별명을 붙혀줬다고합니다)이라고 하면 거의 다 안다고합니다. 본인이 생각하기도 7학년 졸업하고 신학하고 간호공부 1년한것이 전부인데 오래동안 공부한 의사도 못고치는 병을 이렇게 기도하고 치료 그리고 낫고 하는 것을 볼때 하나님의 능력이 분명하다고 간증했습니다. 소문이 나서 젊은이 3명이 그에게 의술을 가르쳐 달라해서 3개월간 주사놓는법 그리고 기도하고 치료할것을 가르쳐 보냈는데 이들도 고향에 가서는 많은 환자들이 금방 회복되고해서 사람들이 많이 찿아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페악트라사역자는 자기집도 짓게 되고 차도 사고 자녀도 3명 또 강가에 땅도 있고 물고기 돌 볼 보트도 있고,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은 불필요한 돈이 수중에 있을때 항상 어려움이 왔다고 하면서 누가 자기 땅을 비싸게 주고 사겠다고 돈보따리를 들고와서 팔라고 해도 돈이 들어오면 문제가 발생할 걸 알기에 그 땅과 같이 일하며 살겠다고 했습니다.

 

10여년전 교회를 비워놓고 프놈펜에서 간호공부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저의 마음이 많이 상심했었는데 이렇게 의술을 통해 예수님을 전하게되고 기난한 자의 병을 고치고 가정도 든든히 서가고 하는 것을보고 기뻤습니다. 코로나전에는 그냥 잠시 잠시 만나서 교회 사역 묻고 헤어지고 자세한 내막을 몰랐었는데 좋은 교제의 시간이었습니다. 신학교 있을때 몸이 약해 자주 아프던 친구가 이제는 신학생들에게 어떻케 약을 잘쓰고 생활태도를 바꾸면 건강해지는지를 가르치겠다고 했습니다. 코로나와 많은 비로 갈길이 막혔지만 그로 인해 귀한 간증을 듣게되어 감사했습니다.

오일팜교회 문제가 잘 해결되고 교회사역을 잘 감당하고 싶다고 그렇게 살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페악트라 사역자가 운영하는 양어장
페악트라 사역자 가족들과 함께 게스트 하우스 앞에서...
페악트라 사역자 양어장 가는 길....
비엘톰 교회, 사택이 새로 지어질 곳에서... 사번사역자, 그녀의 남편과 함께.


8월5일

양철로된 게스트 하우스라 밤에 퍼붓는 빗소리가 난리가난듯 요란하게 밤새 몇번이나 퍼부었습니다. 어제도 식당 찾는것이 큰일이었는데 아침먹으러 이리저리 다니다 손님받는 식당을 찾았습니다. 문은 열었어도 입구에 줄을 쳐놓고 안에 들어가 앉지 못하고 싸서 들고가는 식당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어디로 가야할지 또 다같이 기도했습니다. 코로나로 막히고 홍수로 막히고 우리 힘으로는 어디로 가야할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리엄쪽을 보고 KBS로 돌아 갈까했는데 춘휘형제가 위시앤(쏙행) 부모님이 있는 쁘레높으로 가보자고했습니다. 위시앤은 16세로 부친이 술중독으로 매일 폭행하고해서 부모가 이혼을 하고 아버지와 형제 3명이서 KBS앞에있는 할머니집에서 얹혀 살았는데 거기서도 부친이 술먹고 사람을 때려 그 할머니집에서 쫒겨나고 위시앤도 나가서 일해서 돈벌어오라고 박대를해서 우리 KBS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믿음생활도 쭉 해왔고 3남매의 첫째로 가정이 깨어진 아픔을 지고가는 모습을 종종 보아왔습니다.  쁘레높 그의 고향에 가니 부친은 조그마한 목조집에 혼자살고 다른 두아이들은 각기 다른 친척집으로 보내졌고 모친은 개울건너편 친척집에 얹혀살고 그래서 방에 들어가 부모 두사람, 우리 일행 다같이 앉아 하나님이 남자여자를 만드신 이유, 결혼과 가정을 주신이유, 이전에 나도 술 마시고 가정이 혼란스러웠던 이야기, 그 이후 회개하고 빈손으로 다시 시작해서 하나님의 인도와 공급하심으로 자녀 양육하고 사역해온 이야기를 하고 서로 회개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술끊고 새 삶을 시작할것을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KBS에 와서 기도에 힘쓰면서 지내도록 권했습니다. 내가 영어로 말하면 중국 소년(14세) 데이빗이 중국말로 통역하면 위시앤이 캄보디아어로 자기 부모에게 말했습니다. 이 두 소년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위시앤은 어디서 정식으로 중국말을 배운것도 아닌데 어린나이에 통역까지 할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이전에 중국사람들이 많이 있을때 중국사람만 만나면 말을걸어 대화하며 물어보고 말을 배웠다고합니다. 자기부모에게 통역하면서도 자기가 나면서부터 부모가 싸우고 하는것만 보아와서인지 그간 쌓였던 감정을 격렬하게 토로해내는것을 보았고 어린 나이인데도 부모를 화합시키려는 간절함이 뭍어났고 영어를 중국어로 통역했던 데이빗도 중국에서 태어나 살다가 프놈펜학교다니며 영어배우고 부모가 이혼하고 새엄마와의 갈등으로 우리 KBS로 오게되었기 때문에 통역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것입니다.

 

참 이렇게 14세 16세의 소년들을 통역으로 세우시면서 자신의 부모를 상대로 (혹은 부모를 연상하면서)사역을 하게 하시는 오묘하신 하나님. 또한 우리모두에게 부부관계를 다시금 말씀대로 정립하도록 하시는 그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어느나라 어느 고을에나 존재하는 이 불화와 갈등. 그 속에 우리의 등을 떠미시고 회개하고 화해하라고 이 코로나속에서도 몬순계절에도 열심히 일하시는 성령님. 이 소년 신학생들의 도움으로 사역을 잘마치고 스마따잉에들러 시타(솜판 사역자의 아내)음식점에서 식사하며 시타와 딸 리디아를 만나고 KBS로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