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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Prints/Mission Trip

제 7차 미얀마 선교여행 (2019. 1월 14일--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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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 Biblical Institute of Theology (BIT) in Yangon and had fellowship with bible students and Rev Thawing who is alumnus of FEBC with me. God bless BIT and Myanmar.

 

에미레이트항공으로 이형환목사님과 프놈펜을 출발했다.

15일 00: 20분에 양곤에 도착해 박정덕장로님을 만났다. 진안 사랑의교회 선교팀을 마중하러나오는 길이어서 덜 미안했다. 이번이 7차 미얀마 여행인데 이 중 서너번은 박장로님 신세를 졌다. 공항에서부터 장로님댁에 가서 자고 식사 대접받고 땅쥐 올라가는 버스표 사서 양곤을 떠날 때까지 신세를 여러번 졌다. 이제는 시내외곽에 시나부로 선교센터를 건립하셔서 그곳에 가서 미션팀과 같이 숙박했다. 아버지가 없는 홀부모 가정들에게 방을 제공하고 매달 쌀을 제공해서 그곳에서 모친이 직장 다니면서 자녀들을 양육할 수 있도록하고 성경 찬송 영어 한글 등을 가르치며 50명 정도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한국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이들이 많아 불편함은 별로 없는 듯 했고 큰 공간 안에서 같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복된 일이었다. 미션팀들은 일정대로 아침에 양곤에서 사역하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시내 박물관으로 가서 둘러보고 TawWin Center에 가서 SIM을 사서 휴대폰에 넣고 식사후 시내를 걸었다.

 

16일에는 Thawing NeiBil 목사를 만나기로했는데 우리가 양곤 지리를 모르니 공항에서 만나기로했다. 그는 싱가폴 FEBC 신학교에서 같이 공부했었는데 그 당시 미안마에서 대여섯명이 와서 공부했다. 그는 이제 양곤에서 신학교 학장과 노회장을 하고 있었다. 그의 차를타고 신학교에 가서 신학생들과 교제하고 사택에서 그의 가족과 교제하고 택시를 타고 아웅산 폭파 현장을 둘러보았다. 80년대초 북한 공작원에 의해 많은 공직자들이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공작원 한명은 잡혀 양곤교도소에서 오랫동안 복역하다 만기 출소를 얼마 앞두고 교도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의 비애를 이국땅 양곤에서 또 경험한다. 양곤 국립대학을보고 그 옆 큰 호수가 길을 걸었다. 많은이들이 이 길을 걷고 있었고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인것 같다. 선교관으로 돌아오니 진안선교팀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고 김치찌게, 찰밥, 잡채, 김, 더덕 정말 이국땅에서 풍성한 저녁을 먹었다. 저녁에는 수요예배가있어 참석했다. 미얀마 어린이 청년 어른들의 발표가있었다.

 

17일. 트럭 택시를타고 양곤 국내선 공항으로갔다. 거기서 한 시간정도 날아서 인레호수인근의 Heho 공항에 도착했다. 인레호수는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이곳은 샨지방에 속해있고 남쪽 샨지방의 수도는 땅쥐이고 북쪽  샨의 중심지는 라쇼이다. 공항에서 선교팀이 준비한 주먹밥과 우유를 아침으로먹고 버스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며 영국식민지시절 개발돤 포도농장을보고 땅쥐에있는 Union First Baptist Church를 방문했다. 땅쥐는 해발 1000미터 이상의 고원에 형성된 도시인데 영국식민지 시절 날씨가 선선해서 이곳이 많이 개발되었다. 급한 언덕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는데 밑에서는 볼수없는 소나무가 자라고있고 온도가 밑에와는 10도 차이가나서 시원하고 좋다. 집들도 예쁘게 지어진것들이 많고 샨지방 사람들뿐만아니라 여러지방 사람들이 모이는 상업의 중심지이다. 팀들이 시장간사이에 나는 모토돕(오토바이 뒤에타는)으로 Shan Baptist Church로 가서 샨언어로된 전도지 한박스를 전달했다. 땅쥐에있는 7개교회들은 이전에 몇번씩 들른적이있어 친근하게 느껴졌다. 대부분 언덕위에 위치하고있어서 오토바이가 골목을 따라 올라간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내의 모습은 아름답다. 꽃들도 캄보디아에서는 볼수없는 꽃들이 집들과 조화를 이루며 피어있다. 날씨가 우리에게는 적당하게 기분좋은 날씨일때면 이들은 두터운 쉐타나 잠바를 입고다닌다. 음식은 캄보디아보다는 기름가가 있으나 먹을만하고 샨족들은 얼굴이 희고 우리와 흡사하게 생겼다. 어떤집에 들어가니 부부가 한복을입고 찍은 사진도있어 놀랐다. 이들도 우리와 같은 뿌리인듯하다.

 

18일에는 인레호수를 본후 이 목사님 치아가 금이 가서 호텔인근 칫과에 가서 이를 붙이고 저녁에는 전도자 Victor 씨를 만나기 위해 그의 아들 David에게 전화해서 만나 식사 대접을 받고 오토바이 두대로 그의 집으로 갔는데 무척 추웠다. 빅터씨(70세가량)는 양곤에 신학공부하러갔고 그의 딸이 침상에 누워있었고 그의 아내도 있었다. 그의 딸은 이름이 위마딴인데 2살때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난 후 그로부터 걷지못하고 밖에나가서 놀지도 못하고 그렇케 38년을 침대에서만 생활했다고했다. 참 가슴아픈 이야기를 듣고 또 보았다. 왜 이 가정에 이런 일이... 베데스다연못가의 38년된 병자이야기가 이 미얀마땅에도 있다니.. 미얀마의 아픔을 지고가는 이 순진한 여인이 주의 마음을 나타내는 듯 했다. 강한 불교. 군부의 억압적인 장기통치. 그 올무속에서 제대로 자기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그 어두운 공간속에서 일생을 살아가는 이들. 미얀마의 서민들. 이들의 아픔과 좌절을 이 여인을 통하여 본다. 우리가 찬송을 부르면 그녀도 어린애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따라부른다. 빅터씨에게 이런 아픔이 있을줄이야.. 그는 굉장히 활달하고 호방한 성격이었는데 전에 그의 집을 몇번 방문했을 때도 그의 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육체의 병이 낫고 안낫고는 주님의 주권에 달린 것이고

베데스다의 그 병자처럼 우리 모두가 오래된 내면의 불치병을 가지고있는데

주님께서 낫고자하느냐 오늘도 우리에게 물으시는데

마음을 강팍히 하지말고

바로 그의 음성을 들을때 낫고자합니다라고 대답해야하는데...

그러면 그 죄와 고통은 고쳐주시는데...

큰 도전과 메시지를 안겨주는 방문이었다.

 

1월 19일 조식후 Elite 버스정류장으로가서 이목사님은 Mandaley 로 가시고 나는 양곤으로왔다.

 

20일 다시 그 큰 Emilate 비행기를 타고 프놈펜공항에 내렸다.  다시 심카드 갈아끼우고 쌀국수먹고 여러군데 이메일을 했다.

 

나에게 38년된 떠나지 않는 병은 무엇인가?

 

위마딴을 통하여 나를본다.  

누가 불쌍한 사람인가? 잎사귀 무성한 사역들... 선교를 재조명 해야한다. 메시지는 받는데 고칠 힘이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