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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Prints/Revival Camp

열 두번의 부흥집회로 이끄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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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중이신 이형환 목사님(2010)

 

캄보디아에서 사역을 시작한지 6년정도가 되었을때 이제 나도 안식년을 한번 다녀와야겠다 생각하고 사역을 맡아해 줄 사람을 위해 기도했다. 그 당시 사역은 전국적으로 확장되어가는 때였고 신학생들도 제법 많이 늘어났고 할일이 많았지만 7년째는 휴식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다. 그러나 세워논 교회들 (그당시는 10여개)은 많이 불안하였고 문제도 계속 터져나오고 신학생들도 중생과 성령과는 거리가 있는 신앙생활을 하였고 이 어수선한 상태에서  6개월내지 일년을 쉬다 돌아오면 과연 교회와 신학교는 과연 어떻케 되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였다. 제일 심각한것은 본인이 타락한 죄인이라는 인식을 하기를 거부하는 마음 자세가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신학을 할수록 교회를 세울수록 이러한 위선의 기초 위에 교회와 십자가를 두고 선교사나 후원교회와 일을 해나가는것이 앞으로 선교의 큰 오점으로 남을것이 분명했기에 마음이 더 아팠다. 이 일을 어떻케 해결할 수 있을까?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마을들이 훨씬 많고 신학생을 계속 배출해야하고 교회도 계속 세워 가야하고 선교팀들도 물밀듯이 들어오고 캄에 교회 지을려고하는 한국교회도 많고, 이러한 대세에 나는 어떻게 선교해야하나? 큰 고민이었다.

 

그런 고민으로 해결책을 모색해보고 그러다가 우리나라도 평양 대부흥이 선교사들이 먼저 같이 모여 죄를 자복하고 한국교인들도 죄를 자복하게되고 그로인해 성령이 교회에 크게 역사하게되고 전국적인 부흥이왔다는데 이곳에서도 그 방식으로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후로 계속 그런 기회나 모임이 일어나기를 기도했다. 제 7년이 되는 해에도 제 10년이 되는 해에도 안식년은 갈 수 없었다. 물론 그 후에도 지금까지 갈 수없었다. 연합 부흥집회를 할려면 경비가 많이 드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2008년 초가 되니 일하시기 시작하셨다. 한국의 끝. 목포밑에 압해도의 복용교회 선교대원 5명이 2월달에 우리 KBS에 오셨다. 전혀 모르는 교회였다. 나는 한국에 압해도라는 섬이 있는 것도 그 팀을 통해 처음 알았고 목사님이 인솔해서 오신것도 아니고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청년 이렇케 5명의 적은 인원이지만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팀이 도착해서 무엇이든 일을 시켜주면 그 일을 하고 가는것이 담임목사님의 지시였기 때문에 할일을 알려 달라고하셨다. 그때 KBS 골짜기 쪽에 건기때 빨리 돌담을 쌓아 벽을 만들어 놓으면 우기때 토사가 산위에서부터 쏟아져 흘러내려왔기 때문에 돌담높이만큼 꽁짜로 흙을 채워서 질퍽한 땅을 쓸수있는 땅으로 만들수 있기때문에 나는 그분들에게 돌담공사를 부탁했다. 아침드시고 나가서 땡볕에 권사님은 시멘트를 비비고 대학생은 모래, 시멘트를 나르고 장로님은 시멘트와 돌로 돌단쌓으시고 거기서 점심드시고 바로 오후에도 그 노가다일을 계속하셨다. 2일째. 3일째. 일주일 내내 땡볕에 나가 그 일만하다 귀국하셨다. 이제껏 온 200여개의 선교팀중에 유일무이한 우직하고 충성스런 팀이었다.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했다. 이 더운 날씨에 하루 이틀만 하시고 비치도 가고 시장도 보고 사역지도 둘러보시고 하셔도 될텐데.. 어떤 담임목사님이시기에 이곳에 안계시는데도 철저히 그 일을 다하고 가실까. 그리고 그 교회는 바쁜 사역속에 잊혀졌다.

 

그리고 몇달 지나 후원교회인  미국 Church Everyday 의 최홍주목사님이 오셨다. 식사 중에 나의 비젼인 부흥집회를 이야기했다. 한번 해봅시다라고 화답하셨다. 이 일을 곧 MAC 이사들과 상의했다. 익명의 헌금자가 우리 회의를 듣고 얼마를 헌금했다. 이제 이 두 헌금으로 행사를 할 수 있겠구나 생각되었다. MAC 소속 선교사님. KBS 출신 지방교회들. 또 여타 교회들해서 최대 1000명을 예상했다. 어디서 잘 것인가. 어떻게 먹일 것인가. 프로그램은? 행사기간이 12월 건기인데 물은 어떻케 할것인가? 전기는? 뱀으로부터의 공격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 텐트를 치고 시멘트 바닥에 박스를 깔고 자더라도 캄교회와 선교사들이 같이 모여 말씀 듣고 기도하고 같이 먹고 자고하면서 회개하고 성령받고 부흥이 일어 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이 일을 감당했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복용교회에서 중보기도팀이 부흥집회에 참석하겠다고 연락이왔다.

 

 

2008년 12월 10일 마침내 제 1회 부흥회가 시작되었다. 복용교회의 이형환목사님도 그때 처음 뵈었는데 19명의 기도팀을 인솔하셨다. 미국에서도 강사와 성도님이 오시고 한국에서 대일교회 청년들 싱가폴 까똥교회에서 13명. 캄교회와 외국교회 합해서 약 50개 교회에서 온 1300여명의 캠프가 4일동안 이어졌다. 처음하는 대규모 행사라 매끈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나도 시멘트바닥에 끄떼를 뒤집어쓰고 잤는데 그렇게 추울수없었다. 불을 피워놓고 밤새도록 불 옆에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 밥을 어떻게 먹였는지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복용교회 중보기도팀은 조별로 4일간 밤낮으로 기도를 중단하지 않았다. 여하튼 별탈없이 집회가 끝났다. 한번 하고나니 다시는 하고싶지 않았다. 집회 펀드조성. 숙식.물.전기.대회장. 교회소집.강사섭외. 선교팀 뒷바라지. 참 힘들었다. 다음 해가 되었는데 복용교회 이형환목사님이 또 부흥회를 위해 기도를 시작하셨다고 연락이왔다. 그리고 그를 위해 헌금을 모으신다고 했다. 그래서 또 해야겠구나하고 생각하다보면 또 건기가되고 부흥회준비가 시작되고 복용교회 중보기도팀이오고 여러 돕는 손길이 부흥회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제 3회 때에도 제 4회 때에도 이러한 패턴이 계속되었다. 그 한국 끝에 있는 교인 120여명의 농촌교회에서 부흥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헌금이 얼마 모였습니다.' 이렇게 연락이오면 아! 올해도 해야 하는구나. 그렇게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목사님이 2012년 7월 광주 계림교회로 부임하시게되고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였지만 단기선교를 가본 적이 없었는데 선교를위해 기도하고 몇개월만에 헌금을 모으고 그해 11월 선교팀을 이끌고 11월 집회를 가능하게 만드셨다. 그렇케해서 제 5회 6회 ...10회까지 이어졌다. 그후 이 목사님이 계림교회를 사임하시고 쉬고 계셨는데도 11회 12회 부흥회를 위해 기도하고 헌금을 모으셔서 12회까지 연속으로 기도와 헌금으로 이 일을 이끄셨다.

 

 

그간 집회 중 뱀에 물리기도하고 선교팀이 프놈펜에서 캄퐁솜으로 내려오다 버스가 트럭과 충돌해 넘어져서 다치기도하고, 경비 줄이려 1000여개의 캄.햄버거를 만드느라 밤새도록 소세지 썰어서 야채넣고 소스만들어 넣고 고생하기도 하고, 집회 끝나고 술취한 차가 와서 가만히 서있는 우리 차를 받아 선교대원이 다치기도하고, 참가한 교인이 집회중 쓰러져 병원에 이송하니 죽었다해서 모두 무릎꿇고 긴급 기도하니 맥박이 돌아오고 의사도 놀라고 우리도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기도하고,  참 다사다난했지만 12회까지 (2019년) 마치게하셨다.

 

 

그리고는 코로나가 왔고 이제는 하고싶어도 못하는 시기가 되었다. 우리는 얼마나 캄.교인들이 부흥집회를통해 회개하고 변화되고 성령충만 해졌는지 알지못한다. 그러나 이 일은 성령님이 하시고 싶어하셨다고 믿는다. 복용교회앞 큰 돌에는 "성령충만" 이란 큰 네글자가 있다. 이형환목사님은 항상 성령충만을 강조하셨다. 우리는 캄.교인과 선교사가 죄를 회개하고 성령으로 연합하기를 소원했다. 여러 협력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이 부흥집회를위해 기도하고 후원했다. 여러 강사님들이 즐거이 메세지를 전해주셨고 우리 신학생들은 매년 부흥집회 3개월전부터 집회준비 대형으로 헤쳐모여서 전심전력 준비했다. 음식 준비하는 팀, 화장실 샤워장팀, 프로그램진행 팀, 숙소준비 팀, 오물처리 팀, 각 파트마다 짐을 나누어졌다. 이제는 힘든 부흥집회의 계절이 끝났다. 마음속에서 부흥집회를 시작한다. '복음의 씨. 회개의 씨. 부흥의 씨. 연합의 씨. 성결의 씨. 사랑과 희생의 씨' 를 여름철 내내 뿌렸다. 이제는 추수기로 접어들었다. 잘 영글기를 기도한다.

 

얼마전 밭을 만들려고 땅을 일구고 잡초를 제거하다 복용교회 제 1회 선교팀 5명이 시멘트 위에 새긴 글자를 발견했다. 그간 14년이 흘렀고 12회의 부흥회는 완료되었다. 마치 보석을 발견한듯 기뻤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모든 주님을 향한 땀과 수고가  묻혀버리고 잊혀진 듯 하지만 하늘에 기록되어 있다고 믿어졌기 때문이었다. 이 철저한 순종. 성령충만을 위한 위대한 열심. 또 의심되지만 결국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열심히 준비함. 여러 교회와 성도들의 사랑. 이러한것들이 모아져서 큰 불꽃을 만든다는것을 알게되었다.

 

† 이형환 목사님 글

샬롬~
행1:8절은 승천하시기 전 주님의 명령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복용교회, 광주계림교회, 그리고 오일교회를 섬기면서
온 교회와 함께 캄보디아 선교를 지속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07년 복용교회 성전건축을 마친 후 해외선교지를 찾다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한성호선교사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성호,김은실 선교사님이 복용교회를 연이어 방문하게 되었고
두 분을 통해 듣게 된 선교지를 온 교회가 소망하며 기도하였지요.
2008년 정기환장로님를 포함한 5명의 단기선교사 파송으로부터 시작하여
2020년 5개 교회가 연합하여 단기선교를 다녀오기까지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목표는 항상 동일하였습니다. ‘성령을 받도록 돕자’는 것이었지요.
다메섹의 제자 아나니아의 마음으로 섬기고자 하였습니다.
거의 집회와 중보기도로만 이루어지는 단기선교였지만
준비하면서 매 해마다 크고 작은 어려움들에 직면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어려움들을 오히려 간증할만한 역사로 바꿔주셨지요.
교회가 새로워지고 예수님의 몸으로 세워지는 것을 목격하게 하셨습니다.
특히 제가 담임목사직을 사임한 후 맞게 된 2018-2019년의 단기선교는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거의 포기한 상태였는데 미리 헌신을 작정하여 예비하신 손길을 통해
은혜의 물줄기를 이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오늘도 이 말씀을 다시 가슴속에 새겨봅니다.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24시간을 같이 있었어도 ‘교회’가 되지 못했던 제자들...
그들이 순종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을 때 ‘성령을 받았고’ 그들은 교회가 되었지요.
120명만으로도 충분한, 온 세계에 빛을 비추기에 충분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KBS가 그런 교회로 든든히 서 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곁을 흑석산에서 함께 기도하여 온 우리들이 지키겠습니다.
그곳의 형제들과 함께 나눌 찬양을 기대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