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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신 Rev. Timothy T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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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 Timothy Tow (1920-2009) https://en.wikipedia.org/wiki/Timothy_Tow


싱가폴 앵글로 챠이니즈에서 수석으로 졸업하고 영국으로 법학을 공부하러 준비하였는데 중국에서온 부흥사 죤성의 부흥회에 참석한후 주를 섬기기로 결심하고 진로를 바꿔 미국 훼이스 신학교를 졸업한후 싱가폴에 돌아와 성경장로교회를 싱가폴에 처음으로 설립하여 50년이상 생명성경장로교회(Life Bible-Presbyterian Church) 의 담임목사로 재직하며 1962년 FEBC(Far Eastern Bible College) 신학교를 창립함.

 

 

나는 싸이판에서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싱가폴 SBC 신학교의 중국어부 MDiv를 공부하기위해 원서를 신청해놓고 입학허가를 기다리고있었는데 통지가 오지않아 Mrs 심장로님이 자신의 친척중에 신학교를 하시는 분이 계시다고 나를 그곳 FEBC로 소개했고 그래서 FEBC 로 가게되었는데 나중에 SBC에 찿아가 물어보니 입학허가서를 Saipan 이 아닌 Spain 으로 보냈다고했다. 철자가 비슷해 혼동하는 바람에 나는 다른 신학교에서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수업하게되었다. 나의 비전은  중국으로 가는 것이었기에 불만스러웠지만 영어로하는 FEBC로 가야했다. SBC에서는 다시 받아주겠다고 했으나 기숙사는 다차서 들어갈수없다고했다. 나는 돈도 없었고 토우목사님이 너무 친절히 대해주셔서 영어로 신학을하고 중국어는 틈틈히 익히기로하고 FEBC로 마음을 정했다. 신학도 건전하고 장학금도 주고 집사람도 MRE 과정을 하라고 배려해주시고 밑에 애들 둘도 교회에서하는 유치원에 다니도록 해주셨다. 싸이판에서 전재산 다 까먹고 수중에 5000불 남아서 한학기 하고나면 돈이 다 떨어질 상황이었다. 한 학기만이라도 마치고 한국을 가든 그 때가서 생각하기로하고 여하튼 5명의 가족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다. 그러면서 집사람이 전도사로 봉사하고 처가집에서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보내오고 싱가폴 교인들로부터 러브 기프트받고 이렇게 3년 신학을 마칠수있었다.

 

 

어느 날 학생비자 문제로 스폰서인 토우목사님이 나와 이민국에 가게되었다. 조그마한 자동차를 본인이 직접몰고가서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1500명의 교인이있는 교회의 고령의 담임목사인데도 오래된 소형차에 직접운전. 검소함이 몸에 배어있었다. 전도사나 부교역자가없고 그 일들을 집사님들이 맡아했다. 땅과 건물을 소유하고있으니 월세 나가지 않고 사례비도 생각보다 적었다. 그런교회의 본당에 에어콘을 설치하지 않고 선풍기를 돌리고 청소하는 사람이 두세 명있지만 본인도 수시로 빗자루를 들고 낙엽을 쓸고 그래서 어떤 신입생은 그 분이 청소부인줄 알았다고도하고 여하튼 그렇게해서 헌금의 70프로 이상을 해외 선교에 사용했다. 교인들 중에는 불만도 있었지만 본인이 솔선 수범함으로인해 문제는 커지지 않았다. 한국 사람을 항상 칭찬하셨다. 김치를 많이먹어서 그 파워로 세계 곳곳에 선교한다고하시고 복음이 소아시아에서 서진하게 된 이유가 동진하게되면 중국이 나오게되는데 중국사람은 좋은 것은 다 감추어놓기때문에 복음도 다 집속으로들어가 중국에서 복음이 멈추어 버릴것을 아시고 서진하게 된 것이 아닐까 반농담도 하셨다. 나는 중국으로 선교갈 것이라고 항상 이야기했지만 나의 말에 관심을 가지지 아니하신 것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신학교 교장을 20년이상 하다보니 학생을보면 어떤방면으로 나가야 그 재능을 발휘할 지를 간파할 수 있는 안목이 좀 생겼는데 그 분은 그때 벌써 40년 이상을 목회와 강의를 하시고 그곳에서 50여개의 B-P 교회가 생겨나고했는데 나의 비전에 동의할 수가 없으셨으리라 생각된다. 지금 내가 생각햐도 중국으로 가는 길을 막으신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모른다. 내가 중국. 중국할때마다 그분은 그냥 웃으셨다. 그는 중국인으로 믿음의 뿌리를 가진 집안에서 성장했고 중국 선교를 아는 사람으로 내가 불이 붙어 중국선교 말을 꺼낼 때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이야기하셨다. 나는 그 때  그 분의 반응이 참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졸업하고 사역지가 결정되지 않고 오라는 곳도없고 막막할때 갑자기 캄보디아에서 지미 림 선교사가 FEBC로 피신나오고 그의 간증으로 라이프교회가 캄보디아선교의 부흥이 일어나고 나도 그곳으로 부르심에대한 확신이서고 캄보디아로 가겠다고 말씀드리니 그때부터는 후원.파송.목사안수를 일사천리로 진행하셨다. 나는 그분에게서 신학.경제생활.목회.선교.등등 많은것을 배웠다. 그것을 선교지에서 적용하고 감사한다. 특히 부족하지만 영어로 신학하게끔 상황을 인도하셔서 정말 잘되었다. 어떻게 보면 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신 분이 이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