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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Prints/Mission Trip

Indo-China mission trip (3rd ~ 22nd. July.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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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아침4시부터 짐을싸서 찬송가, 공책 큰박스, 식판 50개, 김치, 명월초, 캐리어 등등 한차 싣고 한국에서 온 세 청년과 트모방으로 갔다. 우기인데도 길은 그렇케 많이 훼손되지 않았다. 세번째 다리 지나 졍글의 바다에서 광대한 트모방 졍글 지역을보고 오냐행교회 소폰 사역자도 만나고,  비젼교회에 도착하니 하루 일찍온 사역자들이 큰 스팀 밥솟에 밥을하고 있고, 세 청년들은 projector 설치를했다. 꼬꽁인근의 10여개 교회에서 40여명의 성도가 목회자들과 같이왔다. 첯 예배를 드리고 다같이 교회에서 점심하고 인근의 만나팜으로 가서 유정란 닭 2000여 마리에서 , 하루에 달걀이 1300개 정도 나오는것, 사과나무, 마카데미아, 고추, 참외등 시험재배 20여개의  여러 작물 재배를 보고, 그간 트모방에서 김재호 목사님이 3년간 일궈놓으신 일들이 하나씩 열매맺혀가고 있음을 보았다. 비젼교회로 와서 presentation 을 시작했고 끔산 사역자는 교도소사역, 유치원, 영어교실, 각종 캠프, 스포츠사역, 음료수판매, 등등, 열씸히 사역을하며, 소득도 내면서 그것으로 사역에도 보탬이되는 시스템을 발표했다.
홍미자매는 한국의 조그마한 교회의 실상을 알렸다. 부모님이 세 자녀를 기르면서 신학공부, 목회와 일을 병행하며 목회, 선교를 감당하시는 것을 어릴때부터 보아와서 이것을 간증했고 사례비를 헌금에만 의존할수 없는 경우 열씸히 일하며 목회해 나가는 모델을 제시했다. 교회에는 십일조, 감사헌금등이 꼭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생일에는 생일감사, 취직감사, 결혼감사, 이렇게 여러가지 헌금이 있다고 설명했고 그로인해 한국교회가 선교까지 충분히 감당함을 강조했다.. 이 나라에는 생일 파티를 집집마다 요란하게하는데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거의 보지못했다. 25세의 한국 자매가 캄.교회에 재정에 관해 강한 권면의 메시지를 전했다. 19살 세아 자매는 6개월전 캄. 에 왔을때는 살아갈 힘을 얻었었고 이번 방문을 통해 삶의 목적을 발견하고 싶다고 기도 요청을했다. 김재호 목사님은 자국민에의한 전도, 자국민에의한 예배당건축및 자립.자치 원칙을 설명하고 비지니스를 천직으로 알고 사역을 충실히 해나가면 건강한 교회를 이룰수 있음을 강조했고 바울이 밤낮으로 수고하며 복음 전한일을 모범으로 제시했다.  솜판사역자가 두리안 한자루,  김목사님이 망고스팅 한자루, 또 비젼교회에서  람보탄을 줘서 신선하고 달콤한 현지산 과일을 마음껏 즐겼다.
이제 크리스쳔 공동체, 교회자립, 이런 목표들이 성큼 우리에게 다가왔음을 느낀다.
코로나이후 처음으로 만든 모임이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미팅을 위해 준비도 잘 못했는데 소넴사역자가 잘 준비해 주었고 우리 입맞에 맞는 음식이 나와 청년들도 잘먹었고, 멀리서도 여러교회가 졍글속 어려운 길을 잘 찿아와주었고, 이제는 교리나 말씀만 듣고 먹고 자고 가는 그런 세미나가 아니라 말씀이 생활현장이되고 말씀이 사역현장이 되는, 말씀과 사역이 하나되는 모임을 기도해 왔었는데 그렇케 하나님이 인도해 주심에 감사를 드린다.

 

7월 4일.
아침 기도회때 꼬꽁에서 온 반니 사역자가 말씀을 전하고 고등학교앞에 있는 식당에 가서 꾸이띠우 국수를 먹고 Eco village 를 가기위해 졍글로 들어섰는데 우리 차가 일행를 놓쳐 헤메다가 소넴사역자가 와서 그를 따라 갔다. 정글 갈림길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게된다. 주위 풍경이 거의 비슷하고 표식을 삼을만한 집이나 이정표가 없어서 길을 잃을수있다. 온통 똑같은 바나나 나무이고 핸드폰도 불통이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세상 살아갈때도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쪽을 택할것인가, 중요한 기로에 설때가 있다. 바른 길인지, 헤메는 길인지 나중에서야 알게된다. 기도와 관찰, 확신과 겸손, 하나님 경외와 순종, 모든 것이 어우러져 바른길 선택이라는 축복이 주어진다.
Peacock Eco 에 도착하니 초록색의 넓은 잔디, 확트인 시야,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저멀리 산들, 그속에 팜나무등, 기분 좋은 언덕에 바람은 시원하고,  물길을 따라 짓고 있는 예쁜 방들, 텐트시설, 그 공간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트모방의 아름다움을 즐겼다  모두들 초록색의 대지, 파란하늘의 흰색 구름, 저멀리 산들을 넣어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트모방이라는 본 바탕이 탁월하기에 조금만 인간의 손이 가서 그 수풀을 제거하고 용도에 맞게 시설을 하면 금방 그 숨겨진 보화가 빛을 발하는 곳이다. 앞으로 이런 Eco village 가 많이 들어설것이다. 거기서 로끄락으로 점심을하고 비젼교회로 와서 발표를 시작했다. 스언사역자는 시편 34편, 여호와를 경외하는자는 궁핍함을 당하지 않는 것을 간증했고, 페악트라 사역자는 kbs를 졸업한후 1년간 간호사 공부를 하고 기도하고 링거를 놓아주고  많은 환자들을 치료한 간증, 그리하여 생활도 윤택해지고 예수이름을 높히고, 속모노 목사는 자립을위해 양계를 시작했는데 닭들이 죽어나가고 나중엔 전부 죽게되고, 오히려 이것이 잘됐다고, 매일 3 시간씩 이 일에 매달리고 교인들을 못 돌보게돼고 어떤 구역은 이단에게 넘어가고 했는데 다시 교인과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고 간증하고, 속모노 목사 부부는 전도, 교인양육에 좋은 달란트가 있다. 그 달란트를 계속 사용함이 형통의 길일것이다. 동현형제는 태권도, 유도, 무에타이, 격투기 등등 에서 유단자이고 이것을 통해 신학을 졸업한후 선교를 해보고 싶다고 비젼을 발표했고 또 간단히 시범도 보이고,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되어 그간 자립선교를위해 타피오카를 임대한 땅 6헥타를 심어 안정적인 재정을 확보하려다 일시에 실패한 경험, 그로인해 얻은 교훈을 나눴다. 자립을위한 사업을 시작할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간의 축척된 경험 노하우가 있는가, 이 일로 사역이 방해받지 않는가,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재물을 의지하는가, 이 모든것이 고려되어야하고,  또 사역자도 땀흘려 일하는 삶을 살아야 교인들에게 본이 돼고, 위선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수 있음을 간증했다. 명월초 재배방법, 그 효능과 전도 가치등을 설명하고  kbs에서 재배해서 쥬스로 만들어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회복된 간증 이야기, 또 다른 교회에서도 전도때마다 가지고 다니며 아픈사람들이 회복된 사례를 보여줬다. 캄.전역에 재배되어 하나님의 특별한 치료의 식물을 통해 육적으로도 강건해지길 소원한다.
오후 일정이 일찍 끝났고 일부 교회는 먼저 돌아갔다. 트모방에 바나나 나무를 베어내고 많은 사람들이 두리안을 많이 심었는데 올해 가격이 폭락해서 트모방에서 키로당 3000리엘 한다. 다른 지방것 보다 더 달콤한 두리안과 망고스팅을 많이 먹을수 있었다. 중국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을때 두리안 값이 치솟아 너도 나도 두리안을 심었는데, 이제 베트남에서도 많이 들어오고 캄.에서도 많이 나오니 가격이 폭락하고 농민은 좌절한다. 세상을 따라갈때 항상 이런 위험이있다. 비지니스 선교도 하나님이 지정하여 준 것을 따를때만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밤. 낮으로 수고하여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했던것처럼 우리도 그런 정신으로 사역.선교와 육체의 노동을 병행 해야할것이다.

 

7월 5일.
아침 일찍 비젼교회로 가서 식판을 차에싣고 소넴 가족과 기도하고 꼬꽁으로 와서 이종보선교사님 부부를 만났다. 식사를 마치고 짐을 옮겨싣고 태평 양문교회로 가서 또 몽콧.두리안, 떡옴빠오를 먹으며 사역 이야기를 들었다. 자녀들이 어렸을때 한국을 떠나 선교지로 나와 이제 10년간 선교하며 경험한 일들,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어린이들과 찬양도하고 국경으로 가려는데 정경희선교사님이 우리 짐이 많은것을 보고 국경을 넘어 뜨랏까지 차로 태워주신다고해서 이선교사 차를 타고 국경을 통과해서 뜨랏까지 편하게갔다. 뜻하지않게 편안한 여행이 되었다. 국제면허증이 있으면 본인의 차량으로 태국을 갈수있다고한다. Lotus 쇼핑몰에서 햄버거를 먹고 인근에 있는 터미날에 가서 버스를 타려다 다시 2800 바트에 택시로 가기로했다. 편안하게 잘닦인 고속도로를 4시간 넘게 달려 방콕시내로 들어오니 교통체증이 심하고 폭우가 쏟아져 flooding 되는 곳이 많았다. 프놈펜처럼 물이 순식간에 차오른다. 홍미자매가 아고다로 호텔을 예약했는데 20불인데 도착해보니 너무 좋은곳이었다. 아마 flooding되는 지역에 호텔이 위치해 있고 몬순시즌이라 대폭 할인해준것같다. 바깥이 flooding되서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동현형제는 방콕에서 먹고싶어했던 파타이를 먹게됐다. 방콕의 야경을 보며 번개가 번쩍거리는데 꼭대기 라운지에서 식사를 마치고 내일 일정을 논의하다가 방콕에서 챵마이까지 버스로 11시간 정도 걸린다하여 비행기를 알아보니 60불선인데 수하물 오버챠지를 내면 100불정도돼서 어떻게하나 고민하다 중간지점에서 하루를 보내고 챵마이는 모래 가기로했다. 청년 3명이서 일정, 교통, 숙소, 식사등을 의논해서 결정하게하고 나는 필요한 정보, 상황을 설명해서 그 결정과정이 합리적이 되도록했다.
젊은이들과 여행하니 유익한 점이 많다. 금방 좋고 가격이 싼 호텔을 찿아내고 터미널 위치등을 금방 찿아낸다.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전에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하시고 아비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들에게 돌리시겠다고 하신 말라기 4장의 말씀이 이해가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지혜를 얻고 교훈을 받고, 결국은 서로에게 유익하게 되는 관계, 세대간의 갈등이 아닌 세대간의 허심탄회를 통한 의견조율, 그리고 그 세대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달란트의 공유, 이렇게 함으로서 갈등으로 인한 negative한 에너지들이 모두 건설적이고 창조적이고 유익한 모양으로 바뀔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위에 이루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7월 6일.
방콕에서 챵마이까지 바로 가기가 너무 멀어 김재환 선교사님께 중간에 있는 도시를 하나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수코타이를 추천해주셔서 호텔에서 차를 한대불러 터미날로 가는데 택시기사가 자기 차로 거기까지 6000 바트에 가겠다고 번역기를 돌려 우리에게 제안한다. 너무 비싸서 터미널에서 표를 샀는데 4명이서 1500 바트 정도 했다. 8시 반 차가 있다해서 여권을 다 가지고 가니 매진되었다해서 10시 반 표를 샀다. 시간이 많이 남아 터미널 안에 food court 에서 쿠폰을 사서 각자 원하는 음식을 먹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던킨 도넛에 앉아있다 나는 환전하러 나왔다. 은행에서만 환전해준다해서 택시타고 가니 10시에 문을 연다하여 과일만 사서 다시 터미널로 와서 Seven 11에서 심카드 사서 넣고 승차했다. 장거리 버스라 안에 화장실도 있고 좌석은 편한편이었다. 물과 쥬스, 과자를 안내원이 나누어 주었다. 계속 가다 휴게소에서 noodle도 free로 주었다. 캄보디아처럼 들판엔 아무것도 심지 않은곳이 많고 도로는 잘되있고 풍경은 캄.과 비슷했다. 430 키로를 7시간에 걸쳐 달리는 것이 힘들었다. 동현이는 계속 코, 목이 불편해 힘들어했다. 드디어 수코타이 터미날에 도착해 다음날 챵마이 가는 버스표를 사고 트럭택시에 짐을 싣고 20분쯤 달려 숙소인 Old City Boutique 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나와 노을이 지고있는 하늘과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찍고 세아 자매가 찿던 맹고밥 디져트가 있는 식당에 들어가 식사하고 하루 경비를 모두 합산해봤다. 이 숙소도 인터넷으로 예약했는대 20불도 안돼는데 깨끗하고 Historical Garden 바로 옆에 있어서 걸어서도 이 모든 고적들을 관람할수 있다. 식당에 Life is journey. 라는 글씨가 써있길래 여행 이야기 하고 나도 어릴적부터 지도 보는것을 좋아하고 외국에대한 동경, 그리고 대한항공 승무원, 코오롱 성지순례부서에서 해외여행 인솔하다 사이판으로 이주하고, 결국 신학하게된 이야기.. 인생은 여행이다. 나를 돌아다 보게한 ㅁ문구였다. 여기 13세기 태국의 처음 왕국인 수코타이 도시의 유적지 마을 레스토랑에서 청년들과 여행같은 인생 이야기를 한가롭게 하고있다. 인생도 여행처럼 과정, 과정이 새로움과 사건과 피곤의 연속, 그러나 여행의 종착역에서, 즉, 늙게되고 힘이 빠지게되고 가만히 뒤돌아보는 시간이 오면, 황혼의 노을에 서면, 그리고 유물만 남은 고성과 같은 시간이 다가오면 인생은 숙연함으로 고요해 질수밖에 없을것이리라. 그리고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와 힘과 생기를 바라보며 그속에서 자신의 옛일들을 회상해 보는것으로 소일하리라.. 태국은 십여차례 왔지만 이 중부지방의 수코타이는 처음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왓이 있는 시엠리업 같은 곳일까? 얼른봐서 그곳보다는 많이 조용한듯 보인다.

 

7월 7일 
아침 기도회에 홍미자매가 2 Tim 3:15-18 말씀으로 전하면서, 태국사람들이 불교로 인해 모든것을 수용하는 것을 덕으로 인식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진리의 관점이 아닌 똑똑함, 편리함,  중도타협의 관점에서 봄으로 인해 사망으로 빨리 달음박질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것이 아니라 천국이라는 집에 이르기까지 성숙을 위해 존재함을 강조하고, 이 땅의 삶이 거기로 매진할것을 이야기했다.
자건거를 한대씩 빌려 수코타이 왕조의 유물들을 둘러보았다. 초록색 잔디위에 벽돌 건축물들, 큰 나무들과 대조를 이루는 고대의 유물들, 그 프르름 가운데 생명없는 노력들의 흔적,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에는 돌들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여기에는 붉은 벽돌이 많이 사용되었다. 앙코르유적과는 달리 섬세함은 보이지 않는다. 거기를나와 환전을하고 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고 챵마이로 향했다. 버스가 힘겹게 고개를 넘기도하고 북으로 가면서 나무도 다른 종류가 보이고 졍글지대도 통과하고 5시간 넘게 달려 챵마이에 와서 홍미자매가 트럭택시 운전자에게 목적지를 구글지도를 설명하니 400바트에 가겠다고한다. 짐을 싣고 달리니 비가 쏟아진다. 마침내 포장도로를 벗어나 논길로 들어가 김선교사님 선교관에 짐을 풀고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저녁식사하러 나갔다. 동현형제가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 하여 유명한 태국음식점에 가서 요리를 시켰다. 김선교사님은 중국 청두에서 11년 사역하시다 그곳 상황이 좋지않아 창마이로 와서 중국인 사역을 하시는데 본토에서 넘어온 중국인과 예배드리고, 기도회, 성경공부를 하시고 묘족 사역도하신다. 코로나 전후로 핍박받는 중국인들이 이곳으로 많이 와서 일정기간 지내고 영어도 배우고 다시 미국, 호주, 남미등지로 간다고한다. 핍박의 유용성, 공산치하에서 기독교가 번성했듯현재의 교회핍박이 또다른 형태의 디아스포라를 만들어내고 신앙인을 훈련시키고 있는 상황이라 하신다. 잠간 백화점에 들러 약을 사고 밖에있는 가게에서 간단한 선물을 샀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동현이 학우의 부친이 챵라이 에서 선교하신다 하여 연락해서 그곳에 가면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곳에서 미얀마인 대상으로하는 신학교도 있다고 했다. 우리가 힘들게 들고 온 버마어 전도지 한박스와 샨어로된 전도지 한박스가 잘 사용되어지길 또 타치렉을 거쳐 미안마까지 갈수있기를 기도한다.

 

7월 8일
사모님이 아침을 차려주셔서 선교관에서 아침을먹고 동현이 기침.가래가 심해서 약국에 가서 가래 없애는 약을 사려하니 사모님이 한국에서 가져오신 약을 주시고 꿀물을 태워주신다.
식사후 동현이가 기도회를 인도하였다. 마태복음 10장 1절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쫒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나의 하나님은 절대적인 힘으로 나를 구속하신다. 그리고 나를 쓰시므로 나를 완성시키신다. 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동현이와  세아는 선교관에서 쉬고 우리는 노회 산하 어떤 교회 헌당식하는 예배당으로 가니 벌써 노회에서 많은 하객이 와있고 한국 김천제일교회와 또 한교회가 헌금을 했다고 머릿돌에 쓰여있다. 거기서 양은징 전도사 부부와 이야기하며 타칠렉 국경과 미안마 사역을 이야기했다. 양전도사는 미안마 라쇼 출신의 화교로서 지금은 태국 국적을 가지고 챵마이에 살면서 김선교사와 같이 중국인 교회를 사역하고있다. 파키스탄에서 오신 박영규선교사님을 만나 그쪽 이야기를 듣고 자녀가 챵마이 에서 공부하고있어서 챵마이에 들르셨다고 한다. 챵마이 에는 많은 국제학교가있고 휴양도시이며 병원도 많고, 교육도시 이다. 중국, 미안마, 라오스 까지 아우르는 선교 거점 도시이다. 점심후 선교관에서 잠깐 쉬고 양은징 전도사님 차로 Eternal Life Church 까지왔다. 시내쪽에 위치한 넓은 부지에 아담하게 교회가 자리하고있었다. Nirand 담임 목사님은 싱가폴에서 내가 공부했던 FEBC 신학교를 나왔고 이 교회를 1991년에 개척해서 지금까지 담임하시고 인근 도시에도 교회를 개척하셨고 창라이에 대.여섯개의 라후족 교회를 개척하셔서 목회자를 세우시고 안수하셨다. 그는 이제 66세가 되시는데 미안마 북쪽 티벳 국경지역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성장하다 내전이 터져 가족이 피난가고 결국은 아는 사람 없고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태국 창마이쪽으로 와서 살면서 예수를 믿고 싱가폴에가서 신학도하고 이제는 이곳에 정착하여 많은 사역을 감당하신다. 미안마 언어로도 설교하실수 있고 태국말, 영어 모두 잘하신다. 미안마에 남아있었으면 아마 전투를 하다 벌써 전사하였을 것이라 하신다. 많은 과일로 우리를 대접해 주시고 교인중에 유명한 여배우가 나왔는데 그녀는 촬영을 할때 감독이 우상에게 절하라고 강요하는 것을 기도로 이겨내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한 이야기, 그리고 차량을 바꿀때가 되었는데 20년이나 연락없던 어떤분이 갑자기 차량헌금을 하여 산악을 다닐수 있는 좋은 차를 구입한 간증, 그리고 소수민족들이 추위속에서도 물속에 들어가 침례 받기를 원하는 이야기 등등, 짦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인근의 좋은 아파트식 숙소로 인도해주셨다. 근 20년 넘게 만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환갑이 훨씬 넘는 나이에 만나 그간의 사역을 나누니 감회가 새롭다. 잘 정리된 교회처럼 사역도 잘 하고 계심을 알수있었다. 내일 예배에서 홍미자매가 특송을 하겠다고하니 찬송가 피아노 반주도 해달라고 하신다. 싱가폴 Life B-P Church 의 Timothy Tow 목사님때 동남아, 아프리카, 일본, 한국등에서 많은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 거의 무료로 신학을 하게하고 그 사람들이 졸업하고 돌아가 이제는 50, 60대의 나이가되고 그 나라의 일꾼으로 자리를 잡게되고 열매를 맺어감을 보게된다. 말씀사역자에 대한 투자. 이것은 가장 확실하고 보상이 큰 투자이다. 니란 목사님도 미안마 오지에서 태국으로 건너온 외국인으로써 그래도 Life 교회의 배려로 싱가폴에서 신학을 한것이 그의 사역에 큰 전환점이 되었으리라. 물론 내 경우도 마찮가지지만..  우리 다섯 식구가 싱가폴로 가서 Life 교회의 도움으로  신학을 마치고 안수.파송.후원을 받아 오늘날까지 사역할수 있는 근간이 되어주었으니 외국인의 입장에서 너무 고마운 일이 아닐수없다. 저녁에는 사모님도 같이나와 식사를 하며 대화했다. 싱가폴인으로 80년도 초에 싱가폴 FEBC 신학교에서 공부하셨고 챵마이에 42년을 사셨고 국제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셨고 이제 retire 하셨다. 남편 목사님은 고향 미얀마 산지를 떠나 타향인 이곳 챵마이로 사모님은 고향 싱가폴을 떠나 이곳 챵마이에서 남편과 같이 태국인 사역을 감당하고 세월이 흘러 이제 태국인이 되어버린 인생. 선교의 또 한면을 보게되었다.

 

7월 9일, 주일
아침 10시에 Eternal Life Church 에서 하는 성경공부, 그리고 11시 예배를 참석해서 홍미자매가 피아노 반주. 간증.특송을했다. 필리핀 단기선교때 큰 도전을 받고 선교사가 되고져하는 비젼과 간증을 햤다. 이 교회는 산지에 사는 아카. 리수. 라후. 커렌족들이 타이말로 예배드리고 또 라후족 지역에 있는 5개 교회를 돕고있다. 사모인 Jess는 싱가폴인으로 20대 초반에 이곳에 선교사로 나와 선교하다  남편 Nirand 을 만나 이곳에서 같이 40여년간 같이 사역하고있다. 카렌 사역자에게 미안마 전도지를 보여주고 성도들과 교제하고, 교회에서 커리 누들 점심을하고 니란목사님은 편한 차로 우리를 라후교회로 인도해 주었는데 꼬불 꼬불 산길을 계속 올라가 그곳에 당도하니 오후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홍미자매는 그곳에서도 특송과 간증을 했다. 한국교회에서 후원하여 건축된 교회였다. 1960년대 내가 살던 촌동네와 비슷했고 인정이 많은 교인들이 일일이 우리의 손을잡고 맞이해주고 짧은 시간이지만 뜨거운 교제를 가졌다. 태국북부 지방, 이 산골짜기 마을까지 인도해준 니란 목사에게 감사했고 또 거기서나와 챵라이 춘후이.만페이 부부가 사역하는 곳까지 인도해주었다. 전에는 오토바이 로도 가기 힘든 산길이 이제는 포장이 잘되고 좋은 차를 가지게되어 자주 이곳 라후족 마을을 돌아본다고했다. 이 모든 사역을 볼수있는 특권이 주어짐이 너무 감사했다. 챵라이 병원인근에서 춘후이 형제를 만나 그의 집으로 들어가 식사하고 니란 목사는 다시 챵마이로 돌아가고 우리는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피엔은 4살이 되었고 유치원에 다닌지 1년이 안되는데 태국말을 알아듣고 말도 잘한다고한다. 홍미자매에게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엄마가 내일 유치원에 가야한다고 억지로 데리고 올라갔다. 이 부부는 허난성에서 한국선교사와 같이 피신해 나와서 제주도.태국.프놈펜을 거쳐,  2019년 12월,  우리 kbs에 와서 2년동안 같이 있다가 2022년에 챵라이로 와서 대학캠퍼스에서 전도하고 학사 사역도한다. 춘후이 형제는 그때 나온 이후로 4년동안 아직 한번도 중국에 못들어 갔다고한다. 20대 중반부터 사역을 시작했고 이제 30살 정도 인데 참 대견하다. 오늘 하루도 예기치 않은 많은 사역을 보게되고 많은 성도를 만나 교제하고, 동현이도 많이 회복되고, 세아도 감기 기운이 있다하여 미리 기침.가래약 사서먹고, 참 풍성한 하루였다.

7월 10일
아침 경건회를 같이했다. 기도제목도 나누었다.
1.춘후이.만페이 선교사:교회설립, Heavenly Language Art School 설립, HLAS, 기숙하는 학생과 Restaurant 운영.
2. 홍미: Life Partner 와 같이 선교.
3. 동현: 버마어 전도지, 샨어 전도지가 꼭 필요한 곳에 잘 전달되도록.
4. 세아: 여행중 모두 안전하고 건강하게.
5. Moses Hahn: Indo-China 반도 Mission Network 구축.
기도회를 마치니 박선교사님이 와계셨다. 서로 소개하고 르메르디안 호텔로 갔다. 식사를 하며 사역 설명을 들었다. 박선교사는 동현이 학교 친구의 부친으로 2010년 방콕에서 평신도로서 사역을 시작하시고 2019년 챵라이로 옮겨 탈북자 복음사역을 하셨다. 챵라이에 50  unit의 한인 선교사들이 있다고 하셨고 지금 센터에서 연합사역을 하시고 또 스포츠사역을 위해 기도중이며 좋고 싼 부지가 나와 그것을 확보하시길 기도하시고 있다고했다. 직장생활을 20년 하시고 자비량으로 거의 선교하셨고 최근 목사 안수를 받으셨다. 멋있는 호텔에서 부페를 대접해주셔서 식사후에도 멋있는 강가의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찍었다. 탈북민 선교의 생생한 사역을 듣고 태국 선교의 전반적인 상황과 앞으로 젊은이들을 통해 돌파구를 열어가기위해 스포츠선교를 특별히 간구하신다. 챵라이 에서는 신학교 사역, 기숙사 사역,  센터사역, 이런 카테고리로 사역이 이루어 지고있고 미안마인 상대로 하는 사역, 중국인 사역, 소수민족 사역등 다양한 사역이 있고 이곳이 중국과 가까워서 할아버지 세대 이전부터 많은 중국인이 넘어와서 이곳에 살며 태국 국적을 가지게되어 중국어 하는 사람이 많다. 최근에도 해외투자나 교회핍박으로 중국인들이 많이 넘어온다고한다. 점심때는 시내로 나가 스피앤과 선교사에게 줄 선물을 사고 선교관으로 돌아와 조금 쉬고 있으니 태국 사역자 리쯔량 (니폰)과 홍콩에서온 위니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리쯔량은 부친때 중국에서 태국으로 건너와 미엔마에서도 살았고 모친은 샨족 출신이라했다. 위니는 미안마와 국경에 있는 매사이 에서 어린이 집을 운영하며 산족이나 미안마에서 넘어온 자중에 어려운 집안의 자녀들에게 교육을 시킨다고했다. 만페이 사모가 잡채, 커리, 생선, 된장국등 여러 음식을 준비해서 같이 먹으며 교제했다. 스피엔은 선물도 받고 손님이 많으니 기분이 좋아 왔다 갔다한다. 세아는 그린커리가 맛있다고 내일 시장에 가서 그것을 구입하겠다고하고 홍미자매는 5시반부터 인터넷 수업을 들으러 방에 들어갔다. 오늘 미안마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방문자 모두 중국말을 잘하고 서로 정기적으로 교제를 한다고한다. 동남아에 흩어진 화교들은 각 나라에서 독특한 지위를 유지하며 그 민족에 완전 동회되지 않고 중국인의 기질과 특징을 유지하며 거주하는 나라에 잘 적응하며 주요한 세력을 유지하고있다. 이들의 net work는 아주 강력하고 친밀해서 크리스쳔이 된후에는 복음전파에 이 결속력을 바탕으로 기여하는 바가 크다. 우리 한국은 선교사 파송, 교회건축, 단기선교팀, 구제사역으로 단기적, 각개전투식으로 각국에서 활동하지만 화교들은 오랜 역사와 생활 기반을 통해 은근히 장기적으로 생할속에서 복음화, 제자화를 하는 전략을 쓴다.
 

7월 11일
아침기도회를 춘후이 형제가 인도했다. 한국 복음성가에 태국어를 넣고 그 발음대로 한국어로 음독해놓았다. 박선교사님이 차를 가지고 오시고 춘후이 팀도 죠인해서 그랩으로 차 한대를 불러 가기로해서 택시를 불러 700바트로 해서 출발해서 조금가서 꾸이띠우를 먹었는데 왕족도 와서 먹는 유명한집이다. 캄.보다 쌀국수가 더 맛있었다. 메사이 국경에 도착하니 큰길 양변으로 많은 상점이 연이어 있고 양 볼에 허옇게 칠한 미안마 사람도 많이 보인다. 춘후이 형제가 전화를 해서 짜오 산능 목사를 만나 그가 미안마에서 가지고 온 밴을 타고 식사하러 가서 거기서 사역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은 화교이고 젊어서는 술과 마약에 빠져 마약을 운반하는 일을 하였는데 어느날 경찰에 잡히게되고 마침 그때는 마약을 자신의 몸에 지니지않아 무사했는데 만약 마약이 았었다면 그의 인생이 끝이 날수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그가 하는 일이 목숨을 걸만한 일도 아닌데 돈몇푼에 그런 일을 하고있음에, 부질없음을 알게되고 그리고 20대에 복음을 접하고 예수를 믿고 결혼하여 아내와 10여년간 사역을 해오고 있으며 해마다 10여명에서 20여명을 세례하고 지금은 100명 정도의 산지에서 온 어린이.청년들과 같이 살고 그들을 양육하고 그들이 성장하면 본 고향으로 보내서 전도하게 하는 사역을 하고있다고했다. 그 타칠렉이 있는 산주는 이동하기가 힘든 산악지역이라 본인도 다니기 힘들다하고 워낙 족속수가 많고 다른 족속에 대한 탄압이 심해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고한다. 타칠렉에서 만달레이 까지 가는데도 이틀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험한 지형을 가진 샨주 이기에 이곳을 찿는 선교사들이 드물고 한국인 선교사는 처음 만나본다고했다. 식사도중 그가 아는 사람도 식사하러 들어왔는데  그는 홍콩에서 온 테렌스선교사로 이곳 메사이에서 아내 페니와 같이 사역하며 타칠렉에도 가서 사역한다고 해서 우리가 가져온 두 종류의 전도지를 보여주니 너무 좋아해서 미안마말, 샨언어 두가지 gospel tract을 전해주고 쨔오.샨능 목사에게도 줬다. 이로서 우리가 가져온 두 박스의 전도지를 다 나누어 주었다. 츈후이 형제, 챵라이의 박선교사님, 챵마이의 양은징 전도사님, 이렇케 총 5명에게 나누어준 셈이다. 양은징 전도사가 소개해줘서 짜오 목사를 만나게되고 또 식당에서 홍콩선교사도 만나게되고 다음에 올때는 더 많은 전도지를 가져와서 미안마 타칠렉안으로 들어가 나누어 주기길 기대해본다.
시하눅에서부터 트모방, 꼬꽁으로 그리고 태국 뜨랏, 방콕, 수코타이, 챵마이, 챵라이, 그리고 마침내 태국 제일 끝에있는 메사이에서 이 전도지를 다 전달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다. 꼭 필요한 교회와 전도자들에게 전달되기를 원했는데 그대로 이루어 주셨고 이 한국 젊은이들도 그 과정을 다 경험하게 하시니 참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거기서 택시로 Golden Triangle 로 1500바트에 40분정도 걸려왔다. 반 목조로 된 숙소에 체크인 하고 Opium 박물관에서 담뱃대. 저울, 양귀비 꽃, 등 그당시 생생한 아편과 관련된 생활상을 보고 홍미자매는 인터넷 수업 들으러 가고 우리는 메콩강가  미안마.라오스.중국.을 볼수있는 강변에서 식사를 하면서 이렇게 4개국이 강을 두고 국경을 이루고, 아편이라는 위험한 것을 유통시키는 본거지가 된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golden triangle 이 선교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으니 동현이가 이곳에 교회를 세우면 되겠다고 한다. 그리고 곧 강 저편으로 구름사이로 무지개가 섣다. 그저 평범한 무지개가 아닌듯하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 어떻케 라오스로 넘어가고 이 치앙콩 국경에서 라오스 어느 지방을 먼저 갈것인가 논의하다가 결국은 다시 태국 챵라이로 가서 버스로 태국 중부지방 농카이로 가서 거기서 라오스 비엔쨘으로 가기로 결론을 내렸다.

 

7월 12일.
아침 일찍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 챵라이로 가서 라오스접경지역인 농까이 국경으로 향할려고 계속 연락해도 그랩과 연결이 안되 그냥 여기 치앙센에서 라오스로 가기로했다. 숙소에서 700미터 떨어진 곳에 immigration 이 있어서 가방을 끌고 그곳으로 가서 passport 를 보이고 바로 밑으로내려가 기다리고 있는 배를 100바트씩 주고 메콩강을 10분 정도 거슬러 올라가 배를 리오스 땅 언덕에 대고 계단으로 올라가 일단 같이 기도를했다. 근 20년전에도 라오스에 가서 감시를 피하기위해 눈뜨고 기도한 경험이 있어 서로 서로 눈뜨고 돌아가며 기도했다. 여기서부터 일정이 만만치않고 도무지 예약도 안되고 정보도 아무것도 없었다. 경제특구라고 한문으로 크게 써놓았고 라오스 immigration 으로 들어가 용지를 작성하고 나와서 투어 desk 사람들에게 수도 Vientian을 어떻게 가느냐고 물으니 오늘도 차가 없고 내일도 차가 없다고한다. 그러면 여기서 가까운 도시나 방비엥 이나 루앙프라방 은 어떻게 가느냐고 물으니 거기 가는 차도 없다고한다. 영어도 안 통하고 그 라오스인들은 계속 중국말만 한다.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한국말을 사용하는 것을 발견하고 홍미자매가 그들과 대화하니 그들이 깜짝 놀란다. 이제껏 이곳에 그들 회사(?) 직원들외에 한국사람을 처음 만나봤다고 하면서 여기는 라오스 다른 지역으로 가는 길이 다 막혀있어 우리나라 38선같이 더이상 못가는 지역이라했다. 비엔쨘이나 루앙프라방을 갈려면 태국 챵라이로 다시 나가서 비행기나 버스로 라오스를 가야한다고 했다. 자기네들이 챵라이 가는 차를 잡아 주겠다고했다. 여기서 어떤일을 하는지, 회사 이름이 무었인지 물으니 보안 사항이라 말할수 없다고했다. 거기서는 더이상 다른 지역으로 갈수도 없고 말도 안통하고 해서 방금전 왔던 그 immigration 을 통해서 다시 배타고 태국으로 넘어오니 세관검사에서 짐을 상세히 검사한다. Golden Triangle 지역이라 아편등이 유통되기 때문인듯하다. 밖에 나오니 그들이 수배해준 밴이 기다리고 있어서 짐을 싣고 챵라이 터미널에 와서 1500바트를 지불하고 농카이 가는 버스를 알아보니 오늘은 매진이고 내일 오후 3시40 차가있는데 그 다음날 아침 6시 도착이리고한다. 14시간 이상 타고 가야한다. 차표를 살려하니 이제는 태국 돈이 없어 동현군이 카드로 6800바트를 인출해 내어 표를 사고 인터넷으로 부킹한 숙소에 방두개, 3만원 좀넘는 가격에 체크인 하고 점심을 먹고 라오스에서 일정을 어떻게 할것인지 논의하고, 세븐.11 에서 음료를 사고 방에 들어왔다. 방은 조그만했다. 침대에 누워 동현군이 라오스.골든 트라이앵글.경제특구를 검색해보니 우리나라 외무부에서 안전공지를 올려놓았는데 최근 구인 광고에서 라오스 북부 골든 트라이앵글 보까이 지역에 암호화폐. 통.번역 하는 일을 한다며 높은 소득을 보장한다며 사람을 모집해 불법한 일을 하니 조심하라는 글을 올려놓았다. 우리가 방금 갔다 나온 그 지역이었다. 앞에는 강으로 막혀있고 또 들어가서는 다른 지역으로 통행이 막혀있는 지역이라 외부적으로는 경제특구라는 안전망을 확보하고 여러 불법의 본거지가 될수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지역이었다. 우리 일행이 참 위험할뻔 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자 마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 한국사람들 ( 무슨 일을 하는지 불명하지만) 을 만날수 없었을 것이고 그곳을 헤메다 안좋은 일을 만날수도 있었으리라.. 오후에 사진 현상하는 곳이 있어서 라오 마을에서 아이들과 찍은 사진과 여러 사진을 현상했다. 저녁때 춘후이 집에 도착하니 춘후이 형제는 손님이 오신다고 방콕으로 가고 우리는 만페이 자매와 스피엔을 다시 만나 식사와 과일을 먹고 서로 기도하고 돌아왔다. 참 특이한 하루였다.

 

 

7월 13일
아침 6시쯤 나가 사진 현상한 것을 한나 집에 갇다주고 거리를 좀 걷다 쌀국수 하나먹고 Tree Cafe 집에 들어가 주인 Redsookying 과 이야기했다. 큰 리치 나무를 중심으로 방과 마루를 만들어 놓고 콘테이너 방, 세멘트 방, 아직 정비가 덜되었지만 다 완성되면 선교센터로 쓰면 좋을 큰 공간의 집이었다. 태국을 여러날 여행하다 보니 챵라이가 선교 베이스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듯하다. 미안마 타칠렉, 라오스, 골든 트라이앵글, 모두 가까운 위치에 있고, 숙소도 많고 공항도있고, 교통도 편리하다. 여기는 지진도 있는 지역이다. 오후 3시40분 버스라서 체크 아웃하고도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야해서 Cat & Cup 쉼터에 가니 차를 마시며 고양이와 노는 곳이다. 세아 자매가 막대기에 장남감 생선이 달린 것을 가지고 고양이와 한참 놀고, 서양인들도 많이 보이고, 큰 고양이들이 열 마리는 있는것같다. 버스를 타고 얼마를 가니 조그마한 도시락을 주고 3시간 간격으로 정차하는데 밖에는 못나가게한다. 오후에 타서 저녁이 되고 구름이 솟아오르는 하늘을 보며 왜 예수님은 구름과 같이 재림하신다고 하셨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구름속에 짦막한 무지개가 선다. 점점 밤이 되어가고 잠깐씩 잠이 들다가 또 깨고 여러 생각이 든다. 바깥의 풍경들을 보며, 집을 짓고 그 속에 살고, 장사를 하고 농사를 짓고, 결혼하고 그 지역과 그 공간에 묶여 한 평생을 보내고 그 큰 산과 그 큰 하늘은 우리가 다 경험해 보지도 못하고 그냥 아주 조그마한 부분에서 아둥바둥 대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인생.. 불빛은 다가오고 또 지나가고, 저멀리 집들도 조그마한 불빛으로 서서히 지나가고, 그속엔 어떤 인생들이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여행은 그것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려 하지않고 그냥 그때 그때의 감정으로 스쳐 지나가버린다. 나그네라는 단어, 지금 인생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하고, 또 지나가고, 예기치 않은것이 갑자기 나타나고, 그렇게해서 때가 되면 종착역에 와있는 것. 이것이 나그네 이리라. 잠이 오지않아 복도에 한시간을 서있었다. 15시간 동안의 주행, 한번도 밖에 못나가게하고, 미안마와는 확연히 틀리다. 거기서는 바람도 쐬고 국수도 사먹고 간식도먹고 화장실도 갔는데, 이 야간 버스는 시간이 더 안가는것 같다. 동현이는 야간 버스를 처음 타보는데 잘 견디고, 세아는 도착할때까지 잘잔다. 아침 7시가 되서야 농까이에 도착했다. 내일이 더 걱정이다. 비엔짠에서 하노이까지 24시간 정도 버스를 타야한다. 

 

7월 14일
농카이에 아침 7시에 도착해서 바로 라오스 가는 국제버스를 알아보니 7시 30분 출발하는게 있어 표를 사서 타고 태국 immigration을 거쳐 메콩강 다리를 넘어  라오스 immigration 을 거친뒤 비엔쨘 시내까지 한시간이 안걸렸다. 시내는 소박했고 따라사오 버스 터미널에 내리니 짓다 중단한 터미널건물에 철근을 잔뜩넣은 콩크리트 기둥만이 가득하다. 아마 코로나 영향인것 같다. 거기서 택시로 예약한 숙소로 가서 좀 쉬다가 나가서 독립문과 국회의사당을 봤다. 넓은 초록색 잔디를 배경으로 전통스타일 큰 고옥, 큰 나무들, 세아 자맨는 이런 초원, 큰나무, 광장이 좋다고한다. 날씨가 정말 덥다. 캄보디아 4월 날씨다. 기후변화를 실감한다. 저녁때 배선교사님을 만나 라오스 선교 전반에 걸쳐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목회하시다가 오셨고 라오스 정부에 병원을 여러개 지을수 있도록 예수님이 공급하셨다고 하셨고 총회신학교에서 가르치시고 보건부와도 긴밀히 일하고계신다. 한국 교회, 선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같이 이야기하고 이전에 해왔던 한국교회 방식을 이식하는 선교에서 현지교회와 동화하는 방식으로가 더 현명함을 강조하셨다. 라오스 국가에 의료시설등 많은 기여를 하셨음에도 추방당할 위기를 몇번 넘기셨다고하고 공산당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이야기하셨다. 강한 불교국 이면서 공산주의를 하고있는 나라, 이 열악한 조건에서도 1.5프로가 기독교를 믿고있고, 의대에서는 불어로 수업하고 의사도 공무원처럼 봉급을 250불 정도 받고있고 경력이 있는 의사는 정부 병원 근무시간외에 특진을해서 1000불에서 2000불을 벌수있다고한다. 비엔짠에는 중국사람들이 지어놓은 큰, 새로운 건물들이 많고 밤에는 이렇다할 문화나 비지니스가 없고 대부분이 캄캄하다. 코로나 시기동안에는 기름을 수입할수 없어 많은 오토바이와 차가 운행할수없었고 이 나라 화폐인 킵은 계속 추락해서 코로나전에 1달라에 1000킵이 이제 2000킵이되었다. 바다가 없고 땅으로 막혀있는 나라, 그래서 그런지 영적으로도 답답함이 있을것 같고 그래도 신비함과 유순함이 있고, 호수의 달빛이란 뜻의 비엔쨘, 백만마리 코끼리 라는 뜻의 란쌍 ( 라오스), 프랑스 식민지를 겪었고, 이젠 중국 영향권에 놓인 나라. 북한식당도 있고 한국식당도 많고, 오늘 예쁜 한복으로 벽면이 단장된 경복궁 식당 방안에서 여러 요리 시켜놓고 한국선교와 화교선교의 차이점, 현재 중국교회 핍박의 이유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무게감있는 시간이었다.

 

7월 15일
우리 아이들과도 초등학교 5, 6학년때떨어져 살고 지금까지 일년에 한번, 어떤 때는 몇년에 한번씩 만나고, 만나도 길면 일주일, 짧으면 하루 이틀 만나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번 여행에서 젊은 한국 청년들과 24시간 내내 3주 이상을 다니게되니 한국 청년을 통해 자식들을 더 이해하는 계기가된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보고싶어하고, 어디를 가보고싶어하고,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가족생활을 맛보게 해주었다. 이번 여행이 처음에는 여러 나라의 선교활동을 보는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일정이 계속되면서 수시로 변하는 상황속에서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두고 모여서 의논하면서 나오는 본인의 생각들, 또 그것을 공동의 목표로 맞추어 갈려는 노력들,  이 조그마한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보면서 가족은 어떠해야 하는가,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가, 또 크게는 국가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운다. 네명 모두, 선교여행이란 이름으로 떠났지만, 내면에는 풀수없는 자신만의 문제를 가지고 여행을 시작했으리라, 이 여행을 통하여 그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 볼려는 간절함이 각자에게 있었을 것이고. 여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사람을 만나게하고 여러 이야기를 듣게하고, 여러 민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하고, 그 살아가는 모습에 우리의 삶을 투영시켜보고, 여러 상황을 만나게하고 또 그 상황속에 자신을 문제를 넣어 해답을위한 힌트를 얻으려고도하고, 이렇게 몇천 키로의 고단한 여정속에서 처음 가지고 왔던 문제들은 점점 물렁물렁해 지고 고착되었던 것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한다. 
점심때 길을건너 치킨집에 들어가니 한국사람이 주인이었다. 나는 치킨을 주문해주고 건너편 쌀국수를 먹을까 했는데 그냥 먹어보기로했다. 간장 치킨, 후라이드 치킨, 등을 시켜먹었다. 보통 치킨을 거의 안먹고 먹어도 한.두 조각인데, 젊은이들과 같이 먹어서인지 대여섯 조각을 먹었다. 홍미자매는 감기 기운이있어 포장해서 갇다주었다. 오늘은 장거리 가는 날이라 긴장이된다. 오후 6시경에 남부터미날에 도착해 semi-sleeping bus 를 탔다. 길이대로 세줄로 2층 침대가 배치되었으며 그 사이로 2개의 좁은 복도가있었고 복도에도 사람들로 꽉 차게 누웠다. 그러니까 길이대로 5 줄로 사람이 누운것이다. 아래층에는 5줄 2층은 세줄, 화장실 한번 가는데도 누워있는 사람을 밟지 않고 잘 건너가야한다. 이렇게 24시간을 가야할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2019년 일산병원에 입원해 각종 줄을 달고 꼼짝 못하고 침대에 누워 오랜 날들을 보내던 것이 생각난다. 홍미자매가 가장 힘든곳에 자리했다. 자정쯤되자 식당에 차가 서서 잠시 바람을 쐬고 화장실 갈것을 생각하니 물도 마실수없었다. 멍한 가운데 내렸다가 멍한 상태로 다시 탔다. 40여명을 태운 버스는 좁고 꼬불 꼬불한 도로를 올라가고있다.

 

7월 16일 (주일)
차의 움짐임에 따라 이리 저리 몸을 흔들며 자고있는데 차가 섰다. 시동도 꺼서 차안이 후덥지근해진다. 근 한시간이 지나도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한 서양 여자가 유격훈련하듯 어두운 차안에서  바닦에 자고있는 사람들 위로 난간을 잡고 발을 요리 조리 디디며 앞으로 가더니 밖으로 나간다. 좀있다 들어오더니 자기 남자친구를 데리고 나간다. 차안이 너무 더운데도 다른 사람들은 코를 골며 잘잔다. 나도 조심스럽게 2층 침대에서 내려와 발딛일 공간을 확보한뒤 앞으로 전진하는데 누워있던 여자가 짜증을 내며 발을 잘 보고 딛이라고 하는것같다. 나와보니 베트남 국경이었다. 7시에 문을 연다고한다. 장장 2 시간이나 차가 서면서도 안내방송도 없었다. 높은 산악지대였고 길도 좁고 꼬불꼬불했다. 산책겸 걸어내려가니 안개로 뒤덮힌  산에 큰 나무들이 빽빽하고 계곡물소리가 크게났다. 다시 차로 와서 동현이를 깨워 같이 그 계곡으로난 계단을 내려가 사진을찍고 올라와 한참 걸어다니니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라오스 출국 immigration 으로간다. 출국심사후 몇백미터를 걸어 베트남 입국 immigration 을 거치고 짐을 x- ray 로 통과시키고 베트남으로 넘어오니 이 날은 주일이었다. 길가에 앉아 성경본문 요한복음, 골로새서를 읽고 동현군이 기도하고 본문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하기로 하고 내가먼저 하고 동현군이 본문을 가지고 간증하며 나누는데 차를 타라해서 얼른 서서 주기도문으로 마치고 또 차를 타고갔다. 자리를 바꿔 좀 가다하니 정오가 되었고 차는 식당에섰다. 내려서 세아자매와 나는 베트남 Pho 국수를 먹고 홍미자매는 남은 치킨,  동현군은 콜라 한캔만 마셨다. 이제 다시 차로 오르는데 마음이 한결 가볍다. 이제 대.여섯 시간만 가면된다. 차안에 wifi 가 되니 좋다. 세아자매는 잘자고, 잘먹고, 잘 둘러보고 가장 훌륭히 여정을 소화해낸다. 이제 한두명씩 내리기 시작해서 복도에서 자는 사람은 없다. 베트남 사람들은 얼굴이 희고 통통한 사람이 많이 눈에 띈다. 그간 공부한 베트남말을 간판을 보며 읽어보고 뜻을 유추해본다. 그간 꾸준히 먹어온 명월초 쥬스탓인지 피곤하다가도 금방 화복되니 감사하다. 한국에 비 피해로 갑자기 변고를 당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해본다. 예측불허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하나, 이젠 선진국도 후진국도 안전지대가 없다. 오후 3시가 넘었는데도 대부분 사람들은 자고있다. 자다 깨면 wifi 하고 또 자고, 이 두가지를 반복한다. 드디어 오후 5시 반경 하노이 터미널에 도착해 마중나오신 Thanh Xuan 전도사님을 만나 숙소에 check in 하고 식사하며 여러 사역 이야기를 들었다. 전해일 목사님을 통해 이곳에서 만나게되고, 한국에 2004년도에 일하러왔다가 2005년 예수님을 믿게되고 신학도 공부하다 베트남에 돌아와 교회를 개척해서 십수년간 사역해오고 집건물 5층에서 예배를 드리고 새벽 기도회, 그리고 토요일에는 기도원에서 같이 하루 금식을하며, 마약 재활 사역도 하고있고 딸이 3명 있는데 모두 어린이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고한다. 베트남에도 정부에서 인정하지 않는 많은 지하 가정교회와 인가를 받은 교회로 나뉜다고한다. 외국인이 교회에 가면 경찰이 따라붙고 문제가 생긴다고한다. 베트남 식당에서 저녁을 떡뽁기, 김밥, 잡채등 으로 먹었다. 숙소로 오는길에 사탕수수 쥬스를 많이사왔다. 먼 여정을 잘 도착해 감사하다.

 

7월 17일.
장거리 버스여행을 헀는데도 새벽 3시경에 눈이 뜨인다. 이것 저것 하다 좀 누웠다 밖에 나오니 아침에도 덥다. 동현군과 길을 건너 은행을 가려는데 차량과 오토바이 행렬이 끝이없다. 은행에서 천불을 환전하니 이천3백만동을 준다. 조식후 그랩택시로 Tanh Xuan 전도사님 교회를 찿아가 가정집 5층에 만들어 놓은 예배실에서 사역 설명을 들었다. 2007년에 한국에서 돌아와서 16년간 사역했고 아내는 유치원에서 가르치고 딸 셋을 두고있고 기도원도 건축중이고 주중에는 인터넷으로 새벽기도회를하고 토요일마다 기도원에 가서 교인들과 기도한다고한다. 거기서 오토바이 두대로 Blessing Home 유치원에 가서 리앤원장을 만나 유치원 상황을 들으니 원생이 50명, 교사 10명, 종일반 학비 120불 정도, 좋은 위치에 좋은 건물이었다. 거기서 나와 응우언 프억 교회로 갔다. 캄보디아의 프떼아 르바잉 식의 건물이었고 들어가니 기도회 중이었다. 여자 사역자가 말씀을 전하고 있었고 십여명이 앉아있었다. 모두 3일간 금식기도 중이라 했다. 아침.점심은 금식이고 저녁은 먹는다고했다. 그 모임이 끝나고 다시 둘러앉아 우리 소개를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전에는 마약 중독자 들로써 회심해서 10년 넘게 마약 중독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한다. 그리고 고아 사역도 한다고한다.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다음에 만날것을 소망해본다. 이렇게 소수 인원으로 이동하니 그러한 모임에 참여하는것도 가능하다. 거기서 나와 길거리에 있는 분짜집에 들어가 분짜를 시키니, 누들, 야채와 구운 고기가 나온다. 음료수까지 4명이서 169,000동을 내고, 커피집에 들어와 내일 일정을 논의하고 다음 행선지를 다낭으로 정하고 국내선을 알아보니 4명에 수화물까지 해서  355불이 나온다. 세아 자매가 항공편을 검색하고, 홍미자매가 예약하고, 동현군 카드로 결제하고 공동경비에서 지출했다. Team Work 가 잘 이루어진다. 베트남에 태풍이 올라온다는데 항공편이 차질이 없기를 바란다. 좋은 찻집에서 베트남 커피가 유명하다 해서 오랜만에 커피를 마셨다. 역시 먹고나니 속이 편치는 않다. 거기서 시내 호숫가로가서 사진을 찍고 호숫가 경치를 보다가 길가에 대나무 수공으로 정교하게 만든 공예품을 파는 사람이 있어 세라자매가 하나 구입하고 이야기하다 보니 영어를 곧잘하고 영어 뉴스, 방송을 통해 영어를 배웠다고 하고 그 공예품 하나 만드는데 3 시간이 소요된다고 150,000동이 비싼것이 아니라한다. 영어로 된 전도지를 하나 꺼내 설명하고 잘 읽어보라고했다. Hoach 이란 40세된 사람인데 아내가 한명이라고 강조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한명의 아내와 살겠다고한다. 조금 걸어가 전기차를 타고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 이태원 같은 거리를 둘러보니 상점들이 예쁘게 각종 물건들을 진열해 놓아 예쁜 건물과 잘 조화를 이루고 거리가 매력적이었다. 서양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저녁에는 Tanh Xuan 전도사님 가족과 피자집에서 만나 그 집의 세 딸들과 조카 한명, 서로 가족처럼 여러 종류의 피자를 시켜 먹으며,  사모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모님도 한국말을 많이 알아듣는 편이었다. 저녁인데도 많이 더웠다. 선교팀 구성이 잘되어 민첩하게 새로운상황에 잘 적응하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도 친밀하게 교제를 할수있어 감사하다. 홍미자매의 사교성, 동현형제의 코믹함, 세아자매의 냉철한 분석력, 모든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어가고있다. 24시간 버스를 타고온 바로 다음날인데도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여러모로 바쁘게 움직였고 이곳에서 이루어지고있는 사역들을 알려고 노력했고, 또 이곳의 문화,경제, 사회생활들도 면밀히 관찰할수있었다.
보람된 하루였다.

 

7월 18일
아침 일찍 깨서 샤워를 하는데 동현군이 부른다. 태풍으로 오늘 하노이에서 다낭가는 항공편이 캔슬되고 내일로 잡혔다고 문자가 왔다고한다. 이른 아침이지만 모두 모여 일정을 의논했다. 하롱베이를 가는것을 알아보니 차를 빌려 그곳에서 배타고 식사하고 저녁때 돌아오는 경비로 700만동 이라 한다. 다시 연락이 와서 태풍으로 하롱베이 배들이 운항할수 없다한다. 10년전 쯤 에도 하노이에 왔다가 태풍으로 하롱베이를 못가고 사파로 가서 소수민족의 삶을 본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못가게됐다. 관광 다니는 것을 막으신다. 대한항공과 여행사에 근무하면서 주님이 유명한 곳을 다 보여주시고 사역으로 부르셨는데 또 옛 사람이 살아난다. Tanh Xuan 전도사님이 기도원과 마약치료센타를 가자고 연락이왔다. 동현군과 세아자매는 오늘 자유시간을 가지고 싶다해서 두 팀으로 나뉘어 다니고 저녁식사때 만나기로했다. 전도사님이 차를 빌려와서 그차로 하노이에서 화락쪽으로 30여 킬로 떨어진 기도원으로 갔다. 2700평 정도의 산 언덕에 위치한 땅에 기도원을 튼튼하게 짓고있었다. 그곳에 마약에서 벗어난 10명 정도의 장정들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기도원 건축과 농장일을 하고있고 성경도 배우고 기도생활도 같이 하고있다. 앞으로 건축이 완료되면 하노이 인근 교회들이 다같이 기도하는 장소로 사용한다고한다. 그 부근에는 이와같은 마약치료를 위한 건물들이 여러개있고 남자, 여자 따로 수용하며 100명, 200명씩 수용하고, 거의 건물안에서만 생활한다고 한다. 거기서 나와 또 한군데 더 갔는데 그곳에서 열 대여섯명이 같이 생활하고 마약중독, 술중독, 노름중독 이런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찿아와 무료로 거쳐하는데 보통 1년에서 1년반 생활한후 그 집을 떠나 각자의 길로가고 사역을 원하는 사람은 3년 신학공부에 2년 이런 센터에서 봉사후 전도사로 안수를 받고 사역을하는데 베트남에 의외로 이러한 중독자가 많다고한다. 그들과 둥그렇게 둘러 앉아 내가 먼저 간증을 하고 권면을 하고 다음에 홍미자매가 간증을 하고 찬송도 같이했다. 홍미자매는 마치  학생들 앞에 교장선생님처럼 권위를 가지고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 말을 듣고 모두 아멘, 아멘 한다. 참 놀라운 일이다. 처음보는 체구도 적은 한국 자매가  험한 인생을 겪은 우락부락 하고 건장하고 문신을한 사내들 앞에서 담대하게 권면의 말씀을 전하고 또 그것을 순한 양들처럼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이곳에서는 새벽 기도회도 하고 성경도 공부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성경학교였다. 오래전 미국에서 KBS 를 방문한 Kevin 형제 이야기를 들려줬다. 25년간 마약을 하다 목사님 설교를 듣고 개심해서 차에서 먹고 자고 하며 차를 몰고 다니며 거리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고 우리 KBS 에도 교실을 하나 지었고, 목조로 스라에엄벌 교회 지을때도 헌금했다. 이 사람들을 보니 이중에서도 많은 전도자들이 나오리라 생각이든다. 우리가 그곳들을 방문한 사이 동현군과 세아자매는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한 분쨔집에서 점심을 헀는데 국물이 진짜 맛있었다고 하고 호앙끼엠 호숫가로 가서 가게들을 둘러보았다 한다. 저녁에는 다시 모여 인근에 식사하러갔다. 비가 조금 뿌린다. 태풍이 내일쯤 오려나.. 저녁을 하면서 각자 개인적인 중요한 이슈를 꺼내 대화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홍미자매는 졸업후 어떤 사역을 할것인가에 대한 의문점들이 오늘 마약센터에서의 주님의 강력한 임재하심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한듯하고 동현군도 믿음과 transformation, 성숙등에 대해 홍미자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짐으로 더 선명한 해답을 찿으려했고, 세아자매는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때 여행 구성원과의 관계에 대한 어색함이 점차 어떻게 친밀함으로 발전되어 가는지를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오늘도 정말 의미있고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이 모든 각자의 여행기록들, 사진, 동영상, 에피소드, 등등을 잘 취합해서 책으로도 만들고싶고, 앞으로 선교의 하나의 패턴으로 남기고싶다. 태풍이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막아 하롱베이로 가려했으나 그 길도 막으시고 화락으로 길을 여시고 여러가지로 중독돼었다가 그 족쇄에서 벗어난 영혼들을 만나게 하시니 다시금 성령님의 오묘하심을 경험한다. 

 

7월 19일
아침에 8시에 차가와서 짐싣고 하노이 공항에와서 비엣젯 항공으로 한시간만에 800키로 정도 떨어진 다낭으로 왔다. 착륙할때쯤 하늘에서 보니 벼를 막 심어놓은 초록색 벌판과 그 벌판 군데 군데 평화롭게 마을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구불 구불 강물이 흐르고 산위에 형성된 거대한 호수, 프르른 하늘, 남국의 보배로운 땅이라는 느낌이든다. 다낭에 도착해 그랩으로 택시를 잡으니 공항에 있는 택시 가격의 절반이다. 아고다를 통해 호텔을 잡으니 시설은 좋고 가격이 싸다. 버스를 타고왔으면 또 열 댓시간 걸렸을 텐데.. 그간 비용도 아끼고 가는데 마다 신세도 지고 하다보니 이제는 좀 편하게 여행하게 된다. 역시 하늘을 나르는 것이 좋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성령에 따라 사는 삶, 이것이 제일 편하고 빠르고, 쾌적한 삶이다. 밖으로 나와 시내를 보니 큰 강도 흐르고 단정한 모습의, modern 한, 규모가 있는 도시다. 두 자매들이 선물을 사러 간 사이 방에서 쉬다가 저녁엔 베트남 사역자 부부를 햄버거집에서 만났다. 유명 비치의 도시답게 밤거리에는 여러 음식 장사들이 길가에 단정하게 자리잡고 사람들이 시원해진 밤거리로 몰려나왔다. 케빈이라는 베트남사역자는 중독자들을 케어하는 사역을하고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하노이 센터로 보내고 센터를 졸업해오면 그들의 직업을 찿아주거나 가정상담, 신앙상담등 follow-up work를 하고있다. 미국인 아내와 10년간 결혼생활을 해오고있고 나이는 33세, 아내는 31세, 아내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뒤, 21세의 나이에, 바로 이곳 다낭의 NGO에 internship 을 와서 가르치다가 케빈을 만나게되었고 사역의 동반자가 되었다. 동현군이 여러가지 운동을 한다고하자 자신도 태권도 유단자라고했다. 중독자들을 스포츠를 통해 몸과 마음을 균형있게 해서 건강한 사람으로 만드는 사역을 하고있고 다음달에는 42키로 마라톤에도 그 사람들과 같이 참여한다고했다. 눈빛이 또렷하고 친절하며 캄보디아에 있는 베트남인 보트피플 사역도 한번 다녀왔다고하고 배려심있는 사람이었다.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만나고 같은 신앙, 공통의 사역, 이런 이야기를 하며 교제하는것은 큰 기쁨이다. 햄버거 맛이 너무 좋았다고 다들 이야기한다. 미국사람인 케빈의 아내도 일년에 한번씩 미국에 가는데 다낭의 햄버거가 그립다고했다. 호텔에 돌아와 동현군이 수영장에 간다고 서두르길레 나도 따라 올라갔다. 꼭대기층에서 야경을 보며 수영을했다. 밤풍경이 정겹다. 오늘낮에는 하늘을 나르고 또 밤엔 하늘에 있는듯한 수영장에서 이리저리 헤엄을 친다.
다낭은 어렸을때부터 많이 들은 지명이다. 베트남 참전하러 한국군이 부산에서 군함을 타고 떠날때 어린학생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배웅하고, 따이한, 베트콩, 다낭전투, 월맹군, 융단폭격,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며 한국군과 북베트남군이 원수가 되어 싸웠다. 우리고구려 민족의 피가 흐르는 이 땅, 음식도 맛있고, 성격도 끈질기고, 땅도 잘 자리잡았고, 어떻게든 복음으로 택한 백성들이  다 연합하여 큰 무리를 이루고 마지막 선한 싸움을 싸우기를 간구한다. 이 조그마한 선교팀이 그 거대한 목표를 이루려 이 작은 몸짓이나마 해본다. 

 

7월 20일
아침일찍 다낭 비치로 걸어갔다. 6시가 않되었는데 거리에도, 비치에도, 물속에도 사람이 가득하다. 혼자서 체조같은 동작으로 넓은 백사장에서 몸을 움직이는 사람이 많다.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보지못한 광경이다. 음식도 담백한 음식이 대부분이고 체조로 몸관리하고 튼튼한 몸으로 더 많은 것을 이룰수 있으리라. 많은 사람들 위로 해가 떠오른다. 손위에 태양을 얹어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다낭의 태앙은 오늘 저녁 시하누크빌로 지겠네. 우리는 항상 노을지는 하늘과 해변을 봐왔는데, 다낭 사람들은 매일 떠오르는 둥근 광채만을 보겠네.. 이제 우리나라 동해의 일출관광이 다낭의 일출관광으로 바뀌는 듯 많은 한국 관광객이 이곳을 찿는다. 조식이 포함되어 식당에 가니 음식이 훌륭하다. 예약해 놓은 그랩택시가 와서 공항으로왔다. 대기실 한편에서 경건회를 하고 사도행전 16장, 예수의 영이 아시아로 가는 것을 막고 마게도니아 사람이 건너와 도와달라는 본문으로 우리 여행을 적용시켜보았다. 태풍으로 인해 오히려 마약치유센타를 방문하게되고 베트남 사역의 큰 물줄기가 될수있는 현장에 있게하심을 감사드리고 어떻게 도울것인가를 숙제로 가지고간다. 다낭에서도 이 관광.휴양도시에 어떻게 복음사역이 일어날수 있을지 그림이 그려진다.
호치민시에 도착해서 윤선교사를 만나 사역이야기를 들었다.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신대원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10여년 전도사.부목사 생활을 거쳐 이곳에서 11년째 사역해오고있다. 후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와서 오케스트라 조직, 음악캠프, 찬양을 통한 청년사역을 해오고있고, 이곳 선교사들도 현지교회와 동역으로 하는 사역을 할때에 합법적으로 일을 할수있고 단독적으로 하는것은 불법이라고한다. 현지교회의 설립은 까다롭지만 큰 제약없이 교회행활을 하고 큰 교회는 2000명도 모인다고한다. 교회운영에 있어서도 외부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해 나가는 편이라고 한다.
이제 인도차이나를 하나의 국가처럼 간주하고 청년들의 연합집회를 구상하고 있다고했다. 일단 첯 물꼬를 트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인.차. 한인 선교사 대회는 매년 있어 왔지만 아직 이러한 5개국 연합집회는 없었는것 같다. 전쟁을  겪은 나라이기에 내적인 깊은 상처들을 가진자들이 많고 치유 사역을 하게되면 이러한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몇시간씩 통곡을하며 치유되는 모습들을 본다고한다. 음악인으로서, 신대원을 나오고 전도사, 부목사를 거쳐, 베트남에 와서도 그대로 그 경험대로, 오케스트라 단원도 조직하게되고, 지휘도하고, 발표회, 음악과 말씀을 통한 힐링 캠프, 또 정기적인 leadership training,  등의 사역을 한다고한다. 올 가을에는 베트남 청년들을 데리고 미안마로 가서 그러한 캠프를 하기위해 모두 적금을 들고 있다고했다.  바야흐로 인.차 5개국 내부에서 선교가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이제 청년들이 일어나야하고 아비 세대는 그것이 일어나도록 강권하고 전심으로 도와야 할 때이다. 이번 인.차 여행에서도 경험했듯이 젊음에는 큰 힘이 숨어있다. 기성 세대 모두 청년의 시기를 거쳐보았듯이 올바르게 젊음의 힘이 사용되어진다면 그 사역은 기성 세대의 사역보다 더욱 신선할것이고 더 창조적이며, 더 빨리 본질속으로 들어갈것이다. 기존의 한국교회 모델을 선교지에 심는 선교가 아니라 성령께서 인.차 지역에서 벌써 시작하시고 진행하고 계신 그 사역들을 발견하여 그것을 돕기위해 우리는 국경을 넘어가야 할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를 자랑하고, 한국 선교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현지 교회가 미약하게나마  하고있는 그 일을 겸손하게 찿고 그 일을 함께 완성시켜 나가야하리라. 

 

7월 21일
간밤에 두명이 설사를 심하게 했다고한다. 어제 먹은 저녁과 찬 음료수에서 탈이 난 모양이다. 오늘 두명은 오전 일정은 쉬겠다고한다. 아침식사후 혼자서 이리 저리 걸어다녔다. 반미. 분짜등을 거리에 조그만 의자에 앉아 먹는 사람들이 많다. 공원에는 혼자 체조하는 사람들, 아침부터 오토바이 물결이 대단하다. 신호등에 섣다가 또 일시에 움직이고, 날씨가 비가올것 같은데 걷기는 시원하다. 아침부터 바쁜 사람들, 이 땅이 생기고부터 인간들은 무엇에 쫒기듯 바쁘게 살다가 바쁘게 죽음으로 매진한다. 푸른 숲과 들판, 하늘과 신선한 바람, 조용한 오솔길, 꽃들과 낙엽, 쪼개진 돌속에 나타난 돌무늬, 나무 무늬, 나이테, 대화속에 나타나는 내면세계, 말씀에 반응하는 육체의 관찰, 갈등하는 마음의 여로, 맑은 눈동자에 나타나는 신성의 이미지, 그 속에서 많은 것들을 찿고 음미하고 기뻐할수있고 보람되게 살수있는데,  사람들은 복작거리고 불빛 찬란한 도시로 몰려든다. 그 세상이라는 바다속에 같이 몸을 담그고 허우젹대어야 열쌈히 사는것이라 믿는다. 물에의한 대홍수가 이미 왔었고 이제는 인터넷공간과 도시라는 hardware 가 결합하여 말세의 대홍수를 만들어 내고있다. 누가 그 쓰나미에서 살아남을수 있을까. 전쟁박물관으로 갔다. 많은 물자를 가지고도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 월남, 그러나 땅굴을 파며 호치민 지도하에 일사불란 했던 월맹군, 반면에 허풍을 떨며, 허위보고에 흐믓해하고, 물자는 팔아먹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월남의 수도 사이공은 함락했다. 우리의 현재의 교회는? 성령, 양자됨, 중생, 각종 달란트, 많은 신학지식, 각종 양육, 전도, 부흥 세미나, 이러한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왜 영적전투에서 마귀에게 자꾸 패하는 것일까. 거기서 가까운 곳에 있는 대통령궁으로 갔다. 호화로운 대저택, 연회장, 각료들 회의장, 부통령 접견실등 크고 훌륭한 내부 모습이다. 반면, 호치민은 초라하고 서민적인 생활로 민심을 얻었다. 월남은 이 좋은 대통령궁에서 어떤 정치를 하고 어떤 국무회의를 했을까.  영적전투에서도 지도자는 제일 밑바닦의 생활에 익숙해야하고, 자기부인을 통한 냉철하고 현명한 판단을 하고 그것을 수행할 능력이 있어야한다.  VIP들은 미군 헬기로 피신하고, 곧이어 월맹군의 탱크가 정문을 부수고 들어와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그리고는 boat people의 처절한 생활이 시작된다. 배를 타고 무작정 바다로 나간 사람들, 살기도하고 죽기도하고.. 그때 캄보디아로도 많이 도망나왔다. 메콩강을 따라 올라와 똔레샆이나 뽀삿같은 곳에서 호수에서 강에서  배에서만 생활하고 육지에는 발을 디디지 못하고, 비가오면 빗물을 받아먹고 비가 안오면 그 누런 강물을 마시고, 육지로 나와도 그들이 살 땅이 없다.  국적도 없고 학교에 가는 것도, 병원에 가는 것도, 취직도, 모두 할수없다. 빚을 지면 딸들을 팔고..전쟁과 Boat people 의 인생.
저녁에는 윤선교사가 인도하는 금요집회에 다같이갔다. 찬양하고 말씀듣고, 기도하고, 홍미자매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먹었는데 열씸히 찬양한다. 윤선교사는 이사야 6장의 말씀으로 죄사함을 받은자는 신앙이 찬양하는데서 그치지 말고 "나를 보내소서" 의 신앙에 까지 성숙해야함을 강조했다. 이제 내일이면 캄보디아로 돌아간다. 여정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또 아쉽기도하다. 

 

 

 

7월 22일
아침 일찍 거리를 돌아보니 공원에서 재기차기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여자도 뒷발로 재기를 잘 걷어찬다.
아침 경건회를 홍미자매가 인도했고,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의 말씀으로 이제껏 여행에서 라오스 북부로 통과하려 했으나 오히려 정체를 알수없는 사람으로부터도 도움을 받게하시고 태풍을 길이 막히기도 했으나 하노이에서 오히려 더 좋은 시간을 가졌고, 다낭에서도 멋진 날씨로 인해 다낭을 하늘에서 땅에서 더 즐길수 있었고.. 하나님의 더 높은 계획을 알수있었던 여행이라고 고백했다. 우리나라 우등고속같은 버스로 프놈펜으로 가게되었다. wifi도 되고, 잘 출발했는데 세아자매 베트남 비자에 문제가 생겼다. 한국사람은 무비자 14일 체류 가능한데 베트남 입국시 immigration 실수로 3일간만 체류가능하게 적어놓았다. 그래서 그 기간을 이미 초과했기에 국경통과가 불가능할수있고 그렇게되면 공항으로 가야한다고했다. 여하튼 국경으로 가서 해결하기로하고 같이 기도하고 기도를 요청했다. 국경에서 버스회사 직원이 잘 해결해줘서 통과하게되고 출압국 수속이 편안했다. 캄. 비자 받는것도 그냥 차안에서 기다리고있으면됐다. 마침내 프놈펜 시내로 들어와 집사람을 만나 월남식 저녁을먹고 하이웨이를 타고 시하웈으로 오는 차안에서 그간 여행을 총정리하며 각자의 소견을 이야기 하다가 동현형제가 자신의 가정사를 털어놓았다. 젊은 나이에 감당할수없는 큰 시련을 강한 의지력으로 붙잡고 마침내 그 폭풍우를 뚫고나와 캄보디아를 오게되고 이번 인도차이나 5개국 여행의 깃발을 들게되는 하나님의 섭리에 우리 모두 동감했다. 한 청년의 아픔과 그 아픔을 승리하려는 강인한 의지, 그것을 하나님이 가상히 여기사 캄보디아로 보내시고 또 거기서 예비하신 목사님을 통해 그 분노를 삭히게 하시고, 또 이번 여행을 통하여 삶의 좌표와 신앙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여러 모델을 보게하시고 분명한 하나님의 개입하심과 인도하심이 보인다. 나에게도 유익한 여행이었다. 첯째는, 젊은 세대와 3주간 24 시간 같이 지내며 쉽지 않은 여행에서 예기치않은 상황이 발생하고, 평범한 일인 것 같은데도 의견차가 나타나고 이러할때는 어떻게 우리의 목표를 소흘히함이없이 의견차를 조율하고, 세대간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말씀에 합당하게 적용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훈련이었지만 꼭 거쳐야할 훈련이었다. 세대간의 갈등은 자아가 또렷이 살아있기 때문에 언제나 부딪힐 위험이있다. 두번째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여러나라 선교사님들을 일시에 만날수 있었고 그간 궁금했던 사역현장을 볼수있었고 내가 보완해야 할 것들, 또 내가 권하고 싶을 일들, 서로에게 유익한 교제의 시간을 가질수있었다. 세번째는 육로로 이동이 가능한 인도차이나 5개국을 한 지역으로 간주하고 선교전략을 짜보는 것이었다. 불교권, 쌀농사 지역, 집집마다 어떤 모양이든 제단을 세워놓고 분향하고, 가족간의 연대가 끈끈하고, 그리고 한국에 대한 인식들이 호의적인 나라, 메콩강을 따라 국경을 이루기도하고, 그냥 벌판이나 산으로 국경선이 그어지기도하고, 누런 메콩강을 공유하고, 거기서 나는 식자재로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음식을 만들어 내는 나라, 몬순 계절이 있어 우의를 오토바이 안에 넣어다니다 언제든 꺼내 쓰고, 어린아이때 부터 오토바이를 탈줄아는 나라, 한마디로 정겨운 인도차이나 5개국이다.
 여러나라 여행으로 장벽이 점점 부서지고 낮설었던 그 생활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되고 알아들을수 없는 언어들도 결국은 우리가 하는 기본적인 생각과 같은 말을 하고있음을 알게해준다. 이방인이지만 포용하는 제스쳐나 따뜻한 웃음으로 금방 친구가 될수있다. 여행은 사람을 둥글 둥글하게 만들고 지혜롭게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그네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은 다른 곳에서, 정든 친구와 이별해야하고 또 다른 친구가 나타나고, 산과 강을 건너며 나의 정착지는 없어지고 오직 잠시 유숙할 장소만 있을뿐이다. 야곱의 나그네 인생, 주님의 나그네 인생, 복음 전하러 온 지방을 다니던 전도자들, 그 맛을 조금 맛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볍다.